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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Aug 15. 2024

이사 가는 날

나는 어릴 적 주택에서 살았다.

주택이라도 현대식 양옥 주택이 아닌

맞배지붕이 얹힌 불편하디 불편한 그런 주택이었다.

우리 삼 남매는 그 집이 너무 싫었다.

세수도 마당에서 해야 하고 화장실도 밖에 있어

여간 불편하게 아니었다.

한 가지 좋은점은 부모님 방과 우리 방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윗채 아랫채로 나누어져 있어

크게 간섭받지 않는다는 거 하나만 좋았다.

여름에는 그럭저럭 견딜만했으나 겨울엔 웃풍이 세서 코가 시릴 정도로 방은 사늘했다.

집이 전세가 아니었기에 엄마는 언젠가는 꼭 집을 다시

지을 거라고 하셨다.

언젠가는 재건축을 하겠지? 하는 부푼 희망으로 그 집에서 살았던 것 같다.


나는 불편했지만 우리 집이 부끄럽지는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도 집에 데리고 오기도 하고 그럴 때는 엄마가

맛있는 떡볶이를 만들어 주곤 했다.

하지만 여동생은 내 기억으로는 단 한 번도 친구들을 데려오지 않았다. 그만큼 불편하고 허름했던 집을 보여주기 싫었던 모양이다.


우리 집은 도로가에 있는 작은 이 층집 너머 아래에 있는 집이라

계단만 있으면 바로 도로로 갈 수 있지만  계단이 없어서 빙 둘러서 나가야 하는 구조였다.

항상 도로가에 있는 슈퍼로 심부름을 갈 때

중간 계단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늘 생각했었다.


어릴 적 부모님은 우리 집 위에 있던 도로가 집을 사야겠다고

말씀하던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그 집을 사서 우리 집과 함께 집을 지으면 평수도 더 넓어지고

도로가 집으로 인정이 되어 집값도 오른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도로가 2층집주인은 집을 팔 생각이

전혀 없는 눈치였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우리의 새집 증축에 대한 희망은 점점 시들어져 가고

집을 지어주지 않는 아빠가 밉기만 했다.

차라리 전셋집이었으면 계약기간이 끝나서 이사라도 가지

우리 집이라고 가지고 있는 집이 이모양이라 너무너무 싫었다.


드디어 내가 26살이 되던 해 도로가 2층집주인이

집을 내놓겠다고 했고 부모님은 그 2층집을 흔쾌히 사들였다.

1층은 인테리어 가게로 세를 주고 2층을 리모델링했다.

2층 구조는 작은 거실을 사이로 방이 두 개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렇게 첫째 둘째인 나와 여동생이 그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무조건 우리가 간다고 했는데 다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 2층집으로 가는 게 우리의 첫 이사였다.

여동생과 나는 한방을 쓴 터라 짐이라고는 몇 개 었다

새집에 붙박이장을 넣었고 붙박이장 사장님이 낮은 서랍장도 하나 만들어 주셔서 나는 가구라곤 책장하나 달랑 들고 이사를 갔다.

책장을 들고 빙 둘러 새집으로 들어가는 날은

정말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 무거운 책장을 번쩍 들고 갈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옛날집에는 부모님과 남동생만 남겨두고 우리 자매는

편리하고 깨끗한 새집으로 이사를 했다.

깨끗한 붙박이장에 옷을 정리하고 책을 정리하면서

얼마나 행복했던지

26년 만에 감옥이라도 탈출한 사람처럼 행복했다.

그 지긋지긋한 주택에서 탈출하게 된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pop 부업을 하고 있었다.

pop로 동생이름과 내 이름을 예쁘게 써서 방문에 붙여두었다.

친구들과 선배들을 불러서 집들이도 거하게 했다.

푹 꺼진 도로 아래 있다가 도로 위로 오니

부산 앞바다도 보이고 전망도 예술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집에서 4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 집을 떠나게 되었다.


그 짧은 기간에도 나는 여전히 불편한 집에서 사는 부모님 걱정을 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불효녀가 아니었는지...

우리 삼 남매가 모두 그 집을 떠나고

불편하지만 넓었던 도로 아래 우리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부모님이 도로가 2층집으로 오시고

아랫집은 그냥 텅 빈 채 넓은 마당으로 변해 있다.


가끔 부산에 가면 2층집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저 아래 집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저 아래 집에서는 슬픈 일도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만큼 쌓인 추억들도 많다는 것을


나는 2층집으로 이사를 했지만

나의 추억은 여전히 아랫집에 머물러 이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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