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태어나 처음 가봤던 병원
오늘 하루도 직장에서 불태우고 지쳐있는 상태에서
저벅저벅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조용히 문을 열고 바로 화장실로 가서 먼지로 가득 찬
내 몸을 씻고 나서 수건을 목에 두르고 나왔을 때
비로소 우리 귀여운 딸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
.
방긋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행복에 잠겨있을 때
아내가 말을 한다..
“여보 윤서 다리가 조금 이상한 거 같아”
“무슨 소리야? (너무 어이가 없어 할 말이 없다)”
다리 모양도 이상하고 뒤집기도 잘 못하는 것 같고
병원 가서 검사를 받아봐야 할 것 같아
“네가 예민해서 그런 거야 이렇게 잘 키우고 있는데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밥이나 먹어”
힘든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 하루 중 처음으로 행복을
느끼고 감사하고 있는데 분위기를 깨는 아내의
반복되는 이상한 소리 하지만 아내가 아이를
얼마나 정성스럽게 돌보고 있는지 내 눈으로
직접 봐왔기에 가뿐하게 무시했다.
며칠 뒤 저녁 시간 다음 주에 대학병원에 다녀올 테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는 통보를 받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괜스레 엄마의 예민함 때문에
1살 된 아이와 엄마가 고생할 생각에 그리고 업무 때문에
같이 갈 수 없을 때 이야기해서 안 해도 될 말까지
찾아가면서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
이상하다는 성화에 못 이겨 동네 병원에 갔을 때도
의사 선생님이 그냥 별거 아닌데 불안하면 가보라고 하시며
이상한 거면 진료받고 아니면 자기를 욕하라는 어이없는 말을
해서 이건 100% 이상 없다는 확신이 섰는데 그때 수긍해 놓고선
또 병원 간다는 타령이라니.
늘 아닌데 예민하게 구는 거라고 뭐라고 해서인지
상처가 되었나 보다 이번에는 같이 안 간다고 하는 걸 보니
그래 아무 일 없을 거니까 다녀와서 보자고 생각하며
보내줬다
.
며칠 뒤 병원에서 여러 가지 MRI, CT 등 여러 가지 검사를 했고
두개골 유합증이라는 병이 의심되니 알려준 병원에 가서
진료를 한번 받아보라고 말씀해 주셨다
“네? 수술이라고요?” 사실 그때도 실감하지 않고 교수님
말을 사뿐히 넘겨 버렸다
이렇게 엄마가 세심하게 잘 키우는데 무슨 문제가 있어….
.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단언하고 확인을 받아야 더
나를 괴롭히지 않을 것 같으니 여름휴가 마지막 날에
병원 예약을 했다. 그리고 한 달을 그렇게 지내고 병원에서
듣게 된 청천벽력 같은 소리 두 달 가까운 시간 동안 두 번의
수술과 여러 가지 검사들 아이 엄마의 눈은 정확했다.
예민해서가 아니라 정말 소름 돋게 정확했다
.
하지만 나는 그저 지르밟고 바보 취급을 한 채 날이 선 단어를
가득 채워 아내를 비난했으니 얼마나 슬프고 힘들었을까….
가끔 그 순간이 생각나면 아찔함만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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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골 유합증 수술을 끝나고 몇 주둥이 조금 정신을 차려보니
그때 여러 가지 검사를 했던 결과를 들으라 가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나서 병원에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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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정말 이럴 수가 있을까?
병원에 가서 결과를 들어보니 윤서가 아픈 이유를 알 수 있는
주 질환을 진단받게 되었다 “뮤코 지방증 2형”(몸속의 리소좀
효소가 분해하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독성 물질이 쌓이는 병)
.
그리고 이 병은 현재 현존하는 치료법과 치료 약이 없다고 한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나요?”
다행히도 우리나라에서 이 병을 연구하는 병원이 있으니
그 담당 교수님에게 추천서와 메일을 써주시겠다고 한다..
아이를 낳고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윤서는 수술을 벌써
두 번이나 했고 그 수술한 병도 엄청난 사실인데
.
그 위에 상위 포식자 병이 있었다니 정말 인정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윤서는 태어난 지 1년 만에 엄마의 의심과 불안을
증명해 주는 확실한 진단명을 가지게 되었고 엄마는 막연한 불안이
현실이 되고 아빠는 현실이 아닐 거라는 사실을 부정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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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병은 우리나라에 10명도 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100명도 되지 않는 질환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고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 약을 개발해 보겠다고 해주셔서 그동안
온몸에 대한 경과를 검사하고 추적 관찰을 해보자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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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을 꿈꿨던 우리 가족의 하늘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졌고
그때부터 10년 동안 지루한 싸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