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어느새 가을의 문턱이 성큼
찾아온 어느 날 재활을 가는 차 안에서 생각에 잠긴다
올여름 더위를 느끼고 가을을 만끽하는 방법은
외래 가던 길.. 응급실 가던 길..
퇴원하던 길.. 그리고 다시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는 길
수없이 다니는 똑같은 곳에서 봄이 오고 여름이 기운이
들끓어 오르다 정신 차려보니 가을이 오는 소리를 드는다
윤서와 우리 세 식구가 떠났던 여수행 여름휴가 외에는
우리 부부는 수많은 진료를 감당하기 위해 서로 일정을
조율해서 휴가를 쓸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온전히
나를 위해 아내를 위해 그리고 세 식구의 쉼표를 찍어줄
휴가 같은 건 안중에도 아니 생각할 여유도 없어졌다
늘 억척스럽고 단단한 것 같았던 윤서 엄마에게
펑펑 울면서 전화가 왔다 그리고 너무 힘들다고 나에게 말했다
윤서도 직장에서 업무도 잘 해내서 아픈 애 키운다고 일을
설렁설렁한다는 소리가 듣기 싫었던 나는
윤서 엄마가 잘해주고 있으니까! 믿으니까
훈련, 당직 근무, 기타 여러 가지 업무 등을 이유로
윤서가 살 떨리는 검사를 할 때 옆에 있어주지 못했고
또 그 결과를 듣거나 응급실에 갑자기 가야 할 때
늘 빈자리를 만들어 냈다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인 것일까 무슨 일이 있을 때
당직 근무 중인 새벽이었고 훈련이라 산속에 있어
괜찮은척하며 "어쩔 수 없지 뭐"라면서 혼자
억척스럽게 혼자 감당하기 힘든 그 길을 다녀왔던
윤서 엄마에게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호의가 당연하면 권리가 된다고 어느 순간 윤서 엄마가
잘하고 있으니 이번 한 번쯤은 그리고 이 정도는 혼자 다
할 수 있을 거야 하면서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며 더욱더
일에 몰입했나 보다
훌륭한 아빠, 남편이 돼주고 싶었지만 늘 부족했다
하지만 스스로 최면을 걸어서 대단한 착각에 빠져서
나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장인어른 돌아가셨을 때를
제외하고 저렇게 펑펑 운 적을 본 적이 없는데
내 앞에서 너무 서럽게 우는 윤서 엄마를 보며
그동안 내가 한참 잘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힘들지 않았던 게 아니라 꾹꾹 누르며
참고 있었더라는 사실까지..
아이가 엄마의 감정을 귀신같이 눈치챈다는 걸
엄마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검사하러 가면서 얼마나 긴장됐을까..
결과 들으러 가면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멀쩡한 것도 아니고 괜찮아졌다고 말할 것도 아닌데
늘 최악을 말하고.. 기분 좋은 말을 해줬을 것도 아닌데..
나만 힘들고 마음은 찢어들어가고 윤서의 상태는 계속
나빠지고 있어서 아프고 무섭다는 생각을 계속했으면서
아프고 무서웠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정작 옆에 있는 사람이
괜찮다고 말하니 정말 그렇게 믿었던 것일까? 왜 이렇게
무감각했을까 다시 생각해도 소름 돋게 바보 같다
아픈 아이를 키우는 엄마 중에는 제일 건강하고
밝은 모습을 가졌다는 프레임속에 살아온 그녀도
분명히 힘들고 지쳤을 텐데 이쯤이야 윤서 엄마니까
솔지니까 충분히 이겨내겠지라고 생각했던 지난날들..
가슴이 너무 시리고 아프다..
윤서는 아빠 엄마가 가을옷을 입은 올림픽 대교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도록 10월 한 달 동안 삼성병원을
자주 가게해 주셨고 언제든 갈 수 있다고 계속해서
여지를 남겨주신 덕분에 오늘도 내일도 노심초사 대기 중이다
엄마 아빠 타들어 가는 속은 모르겠지만
늘 밝은 모습으로 지내는 윤서가 너무너무 감사하다
계절이 변하고 세상은 급변하고 과학기술은 발달하고 있는데
왜 우리 윤서 치료 약.. 치료법은.. 개발됐다고 뉴스에
나오지 않는 걸까?
윤서야.. 솔지야.. 아빠가 미안하고 사랑해
앞으로 우리 더 힘내자!
내년 올림픽대로의 가을은.. 치료 약과 함께
희망을 가지고 병원에 씽씽 달려갈 수 있는
따뜻한 풍경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