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생활에 누구보다 진심인 조윤서 님이 오늘은
책갈피를 만들어서 집에 가져왔다 그리고 아빠에게
"짜잔~" 하고 웃으며 전해줬다 심지어 오늘 선생님이
책갈피를 완성하고 집에 가서 엄마 주세요 했지만 윤서는
아빠를 준다고 했다고 한다 (기특한 녀석)
무조건 기승전 엄마를 외치고 필요할 때마다 나를 이용하는
따님이지만 나는 윤서의 그런 갑질이 귀엽기만 하고 행복하다
윤서앞에서 아빠 볼일이 끝나고 엄마를 찾을 때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는데 다시 나를 부를 때 무언가 꽂는 모습을 보고
아빠를 줘야지 했나 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이걸 아빠를 위해
만들었다니 혼자 감격에 벅차서 눈물짓는 밤이다
몇 년 전 이웃집에 놀러 갔을 때 주방에 시선을 끄는 컵 하나
그건 아이의 사진이 배경이 된 머그컵이었다 그 뒤로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 문득 컵을 떠오르며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집에도
서서히 생기는 윤서의 얼굴이 담긴 머그컵과 학습 활동의 결과물이
전시되는 장식장이 생기며 가슴이 뭉클하다
윤서에게 6번째 봄이 찾아왔다 생후 50일에 생에 처음 해본
꽃놀이부터 지금까지 봄이 오는 기운과 꽃이 주는 상큼함을
눈을 감고 행복한 표정으로 즐길 줄 알다니..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런 사소함 속에 숨어있는 일상이
나를 감동시키고 눈물짓게 하고 미소 짓게 한다
하지만 따뜻하고 행복한 봄의 에너지와는 달리 윤서의 심장은
늘 차가운 겨울같이 쓸쓸하고 얼어붙고 있는 것 같다
즐거운 유치원에서 엎드려있고 힘들어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으며 어떨 때는 창백해지고 있다고 한다
밤새 숨소리에 기울이다 불안감에 조금 더 빨리 찾아간
심장 교수님 진료 요즘 느낀 증상에 비해 심장이 아파지는
속도는 생각보다 엄청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않지만
입원해서 조금 더 정밀검사를 해보고 수술 여부를
결정해 보고자 하신다 왜? 윤서가 아직 어리니까
그리고 수술은 정말 위험하니까 하지만 그래도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 되니까 뭐든 해본다
가끔 윤서의 머리를 보며 어렸던 윤서의 머리에 수술 자국이
선명해 마음이 아프고 속상한데 이제 가슴에 또 다른 상처를
새겨야 할지도 모른다니 기적이 생겨 심장에 칼을 대지
않았으면 하고 수술을 해도 그 기간은 나중이었으면 좋겠다
윤서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아이가 호흡기에 의지하며
병실에서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그 아이에게도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길 기도하며
우리 가정에도 천당과 지옥을 겪는 날이 없길 바라면서
모든 아픈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꿈이겠지만 역시
내 꿈도 아내와 윤서보다 하루 늦게 살다가..
죽는 것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가족을 지키다가
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그런 꿈?
엄마도 아이도 힘들지만 아빠도 정말 힘들다
설명하지 못할 복합적인 마음들과 숨겨야 할 여러 가지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정들
한 주의 끝 일요일 저녁에 늘 생각한다 다음 주 있을
일들과 해야 할 일 그리고 그것들을 잘 마무리하고
다 다음 주 이 시간에 어떤 표정과 감정으로 앉아 있을까?
그리고 그 일주일은 쉽지 않은 여정의 시작일까?
아님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일까? 정말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나날들인 거 같다
기록도 예후도 평균화된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
희귀한 병과 싸우며 슬픈 일이건 기쁜 일이건 윤서와의 추억을
잊지 않겠노라고 꾹꾹 눌러쓰는 여러 가지 기록들
이 기록의 끝의 기적은 씩씩한 윤서가 행복으로 장식해 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