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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자까 Feb 04. 2023

손절(損切): 6년 지기 친구와 절교 후 찾은 내 인생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대학생 시절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었다. 기숙사 생활을 시작할 때 옆 방에 있던 과동기였는데, 나와 코드도 맞고 게임을 좋아한다는 취미도 같아서 매일같이 붙어있었다. 밤늦은 시간 배가 고프면 기숙사 로비로 나와 같이 야식을 먹으며 지내기도 했고 밤샘 피시방도 즐기며 서로 의지가 되어주었다.


 소심하고 정석을 중시한 나와 달리 녀석은 외향적이며 융통성을 발휘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시험 기간에 같이 공부하다가도 녀석은 커닝페이퍼를 만드는 철두철미함을 보였다. 안 그래도 머리가 비상한 녀석이었는데 커닝페이퍼까지 사용하니 범에게 날개를 단 격이었다.


 나와 녀석은 같이 수강하는 과목이 많았기 때문에 녀석의 성적 향상은 곧 나의 성적 하락을 의미했다. 물론 내가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도 사람인지라 성적발표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후에도 녀석은 미쳐하지 못한 과제를 도와달라며 나를 몇 번인가 찾아왔고 그때마다 내가 한 과제를 거리낌 없이 보여주곤 했다. 하지만 고작 성적 가지고 녀석과의 관계를 놓치고 싶진 않았다. 그 당시에는 분명 섭섭한 마음도 있었지만 굳이 내색하진 않았다.


 녀석 덕분에 이득을 본 경우도 많았다. 낙천적이고 욕심 많은 성격이었던 녀석은 취직을 위해, 떨어져도 좋으니 일단 신청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대외활동에 참가했는데 거기에 나도 동참한 경우도 많았다.


 한 번은 어느 한 대기업에서 주관하는 UCC 만들기 공모전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공모전 주제는 '엉뚱함'이었다. 이는 청년들의 엉뚱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보고자 하는 취지로 개최된 공모전이었다.

 우리는『야생 비둘기들은 집을 만들어주면 그곳에서 살까?』라는 주제로 영상기획을 세웠고, 시청에 전화하여 비둘기 생포허가를 받고 목재를 구하여 직접 비둘기집을 만들며 영상을 제작했다.

 기대도 안 했지만 감사하게도 우리는 이 영상으로 은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럴듯한 성과도 있었다. 2015년에 한국전력공사에서 개최한 『Bixpo 대학창의발명대회 공모전』에도 참가했었는데, 전국에서 출전가능한 팀은 단 열 팀인 대회에서 참가권한을 얻어 창작발명품을 전시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수상은 하지 못했으나 전시회 후에 한 외국인 대학생으로부터 받은 사업제안은 상보다 값진 보상이었다.




 6년이란 시간을 함께한 우리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에도 우연히 서로 취직한 회사가 같은 시가 되어 종종 만나곤 했다. 그때 녀석은 대기업에 취직을 했고, 나는 그 대기업의 하청업체에 취직을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만날 때마다 녀석의 태도에서 점점 나를 깔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와 연락하기 귀찮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별생각 없이 보낸 카톡에서 갑작스럽게 절교 통보를 받았다.


"OO아. 주말에 뭐 하냐? 심심하면 오랜만에 얼굴이나 볼래?"


몇 분 뒤 녀석에게 답변이 왔다.


"아니. 나 약속 있어. 그리고 이제 연락하지 마라. 앞으로 시간내기 힘들어질 거 같으니까."


 이해할 수 없는 답장이었다. '내가 얘한테 무슨 잘못을 했지? 혹시라도 내가 무슨 실수라도 한 게 있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수신차단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더 이상 내 목소리는 녀석에게 닿지 않았다.

 그날, 처음 당한 절교에 정말 한참을 울었던 거 같다.


 그 뒤 3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다른 대학친구들과 연락을 하며 종종 녀석에 대한 소식을 물어봤다.

 하지만 그 녀석과 연락을 하는 친구들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녀석에게 절교당한 사실을 하소연했다. 그러자 친구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친구들은 오히려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면서 나를 위로했다.

 이유인즉슨, 그 녀석은 자기 필요할 때만 연락하기로 소문이 나있어 다들 일찍이 손절을 한 상태였고, 항상 옆에 붙어있는 나를 보며 다들 안타까운 생각을 했다는 것이었다.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내 안에 무언가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자기주장이 약하고 소심한 '호구'같은 성격이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더 좋아한다면 그걸로 괜찮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었다.

 돌이켜보면 첫 만남부터 그 녀석은 내 호구 같은 성격을 단번에 간파해서 나에게 접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숙사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다양한 공모전을 같이 참여했지만, 그건 '나'를 필요로 한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의 시간을 무료하지 않게 해 줄 '아무나'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경험은 하지 않으려 한다. 내 인생의 주체는 '나'이며 타인이 아니다. 남을 위한 인생을 살았을 때 가장 힘든 건 본인이라는 것을 뼈아픈 경험을 통해 배웠다.


 덕분에 내 인생은 보다 선명해졌다. 나를 위해 사는 삶은 나의 자존감을 올려주었고 지금의 나는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때로는 내 인생에 해가 되는 기생충 같은 존재는 과감하게 쳐내야 한다. 

 혹시 주변에 그런 존재가 있다면 더 이상 과감히 손절해 버리자. 찬란한 나의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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