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자신을 지워온 사람들
“괜찮아, 기대도 돼.” 누군가에게는 아주 평범한 말이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 한마디가 견딜 수 없을 만큼 낯설다. 그들은 기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니, 배워야 할 순간에 실패했고, 그 이후로는 누구에게도 등을 맡기지 않았다. 기댄다는 건 누군가를 믿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신뢰는 단번에 형성되지 않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애착 형성'의 실패라고 말한다. 유아기, 혹은 아주 이른 시절부터 형성되는 안정 애착이 일찍부터 흔들렸던 이들은 타인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데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낀다. 감정적 피난처가 되어야 할 부모에게서 일관되지 않은 반응이나 거절을 경험한 아이는 결국 ‘내가 기대면 상처받는다’는 규칙을 내면화하게 된다. 그 기억은 의식의 아래, 무의식의 깊은 바닥에서 살아남아 성인이 되어서도 타인을 경계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들은 타인을 쉽게 믿지 않고, 자신의 취약함을 보여주지 않으며, 무너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두려워한다. 기대는 일은 이들에게 곧 통제의 상실을 의미한다.
현대사회에서 기대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경쟁과 독립을 강조받으며 자라왔다. ‘자립’이라는 말은 미덕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그 속에는 ‘의존하지 마라’는 명령이 숨어 있다.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기대는 사람은 쉽게 '약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감정을 나누는 일마저도 전략적으로 판단된다. 자기표현이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감정을 숨기고, 기대는 척조차 하지 않는 태도는 사실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자기검열이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인간을 '나-너' 관계로 설명하며, 진정한 만남은 상대를 수단이 아닌 존재로 대할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댈 수 없는 사람들’은 대체로 세상을 ‘나-그것’의 관계로 경험한다. 그들에게 타인은 신뢰의 대상이라기보다, 계산과 거리 두기가 필요한 타자다. 그 거리 속에서 그들은 살아남는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신중하고 치밀하며, 이성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런 삶은 늘 조금 고독하다.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이 겪는 정서적 고립과 자기착취를 '긍정의 폭력'이라 표현했다. 할 수 있다, 괜찮다, 견뎌야 한다는 메시지들이 도리어 개인을 고립시키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기댈 수 없는 사람들’은 이 긍정의 담론 속에서 누구보다 충실하게 스스로를 몰아간다. 그들은 약속에 늦지 않고, 맡은 일을 미루지 않으며,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의존하는 일을 ‘비효율’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누군가에게 실망당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감정을 차단한 채 살아가는 자기 보호의 논리가 숨어 있다.
이들은 종종 리더가 된다. 혹은 누군가의 기댈 곳이 된다. 너무도 잘 버티는 사람이기에, 누구도 그들에게 기대는 것이 무겁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기대는 순간을 상상하지 못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효능감이 지나치게 높아진 상태, 또는 방어적 독립이라 본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은 스스로를 밀어붙이게 하고, 그 결과 끊임없는 수행과 완벽주의로 이어진다. 이들의 삶에는 여유가 없고, 실수에 대한 관용도 없다. 스스로도 스스로를 쉼 없이 감시하고 통제한다.
“언제쯤 나는 쉴 수 있을까?”라는 질문조차 이들에게는 사치처럼 느껴진다. 쉬는 일은 죄책감을 동반하고, 쉬는 사이에 나태해질까 두려워하며, 기대는 일은 감정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한다. 그렇기에 ‘기댈 수 없는 사람들’은 어느새 삶의 대부분을 긴장 속에서 보내게 된다. 그들은 피곤하다. 하지만 그 피로를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은 곧 감정의 개방이고, 개방은 다시 상처의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침묵 속에서 조용히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그럼에도 이들이 결코 ‘감정이 없는 사람들’은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감정의 깊이가 있고, 고요한 곳에서 슬픔을 곱씹는다. 그들은 흔히 말하는 ‘쿨한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보여줄 줄 몰라 침묵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어느 날 밤, 조용히 듣게 된 한 곡의 노래,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따뜻한 목소리, 아무 말 없이 건네받은 따뜻한 손 하나에 울컥할 줄도 안다. 단지 그 순간을 ‘기댐’이라 명명하지 못할 뿐이다.
기댈 수 없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조용히 다가와,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주는 것을 가장 크게 느낀다. 그들은 설명을 바라지 않고, 감정을 꺼내는 법도 강요받지 않기를 바란다. 기대라는 행위는 그들에게 있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는 낯선 변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주 가끔, 그들도 기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조용해서 말이 되지 않는 그 바람을, 마음 깊은 곳에서 스스로도 모르게 품는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허락해보는 것. 그것이 어쩌면 ‘기댈 수 없는 사람들’이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조심스러운 회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