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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긴급회항한 아시아나 여객기를 탈 승객이었다.

by 시호

인간은 왜 권력을 탐하는 것일까.


당연히 권력이야 있으면 좋다. 하지만 가끔 꽤나 돈 많은 사람들도 상당한 돈을 포기하면서까지 권력을 탐하는 것을 보면 다 이유가 있지 않나 싶다. 나는 긴급 회항한 싱가포르행 아시아나 여객기를 타려고 창이공항에서 대기 중이던 승객이었다. 그 비행기가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하면 그 비행기를 타고 귀국할 예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싱가포르 창이공항으로 오던 아시아나 여객기는 엔진에 문제가 생겨 필리핀 마닐라국제공항으로 긴급 회항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토요일 밤 이 여객기를 타고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이었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와 동행들은 창이공항에 일찌감치 도착했고, 11월 9일 오후 9시께 아시아나항공 직원으로부터 비행기가 취소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 살다보니 나에게도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싶었다. TV에서만 보던 일이 나에게 벌어졌으니 말이다. 11월 10일, 그러니까 일요일 오전 7,8시께 인천공항에 도착해 잠시나마 휴식을 취한 후 월요일 출근을 해야하는 직장인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좌불안석이 됐다.


이 과정에서 너무도 화나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지만, 누구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처리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보여준 태도에 아쉬움이 남는다.

대체항공으로 중국 상하이를 경유해 인천공항으로 가는 동방항공을 타게 된 나와 일행들은 30분 만에 창이공항을 그야말로 전력질주해 11월9일 오후 11시 상하이로 출발하는 동방항공을 탔고 다음 날인 11월 10일 오전 4시께 상하이 푸동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역시나 꼬이기 시작한 일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푸동공항 직원들이 대체항공으로 동방항공을 제공받은 아시아나 승객들의 e티켓에 문제가 있다며 경유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벽 4시에 벌어진 일이다. 결국 20여명의 사람들은 약 2시간 가량을 오도가도 못하고 트랜스퍼하는 입구에 서 있어야 했다.

그리고 한 시간의 기다림에 지친 나는 국제전화로 아사아나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지만 해당 직원은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푸동공항에 근무하는 아시아나 직원을 불러달라는 요청에 "근무시간이 아니라 연락을 할 수 없다"고 답해 나와 동행들을 절망하게 만들었다. 직업의 특성상 모든 통화를 녹음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결국 푸동공항 직원의 도움으로 2시간 가량의 기다림 끝에 20여명의 아시아나 승객들은 푸동공항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이후 아시아나항공은 대체항공을 탔던 나와 몇몇 동행들에게 "푸동공항에서 겪은 일들에 대해서는 유감이지만 이는 우리의 잘못이 아닌 동방항공이 중간에서 일을 잘못 처리한 것이고, 대체항공을 타고 입국했기 때문에 별다른 보상은 해줄 수 없다"는 연락을 해왔다.


엄청난 보상을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상하이 공항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던 시간들과 밤잠 이루지 못하고 하루를 꼬박 허비해야 했던 그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에 대한 억울함에 화가 났다. 사고야 어쩔 수 없다지만 그 이후 벌어진 일들은 분명 다른 상황을 맞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 그래서 사람들이 힘을 갖고 싶어하는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다. 덧붙여 만약 싱가포르에서 중국을 경유해 한국에 귀국할 생각이었다면 상대적으로 비싼 아시아나 티켓을 살 필요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지만, 힘있는 누군가가 그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할 예정이었다면 아시아나항공은 과연 어떻게 대처했을까. 힘없는 소시민으로서 또 한 번 억울하지만 어디 호소할데 없는 이 심경을 토로해 본다.


하지만 역시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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