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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있으십니까?

바람을 가르며 걷는 당신에게 묻다...

by 시호

옷 사이사이를 무섭게 치고 들어오는 찬 바람을 뚫고 걸음을 옮겼다. 막상 처음 문을 나설 땐 수 십번의 망설임이 찾아왔다. 과연 겨울의 문턱에 밖에 나가는 것이 맞냐고. 하지만 이내 옷깃을 여미고 걸음을 재촉했다. 어느새 중독됐다. 걷는 게 즐겁다.


시작은 가을이었다. 나이가 들어감과 함께 찾아오는 살과의 전쟁이, 나를 걷게 했다. 갑갑한 헬스장보다는 나무와 새를 보며 걷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시작한 산책이다. 처음에는 30분으로 시작해 1시간, 그러다 최근에는 1시간 30분 정도 걷고 있다. 물론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은 쉽지 않다. 또 일 때문에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때는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 산책이라는 것이 꽤나 중독성이 있어 비오는 주말 아침에 우산을 들고 길을 나섰다. 그만큼 좋아하기 시작하면 그것보다 무서운 게 없다. 특히 가을 산의 풍경은 그야말로 매일 매일 다른 놀라움을 선사한다.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누르게 되고, 이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어 사진을 공유하게 된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누군가로부터 한 통의 메시지가 날라왔다.


"고민 있으세요? 요새 날도 추운데 공원 산책을 자주 나가시네요?"


문득, 내가 고민이 있었나? 생각했다.


음...


고민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산책을 한 날은 다른 날보다 좀 더 양질의 잠을 잤으며, 마음의 고민들로 인한 고통이 덜했다는 점을. 아마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짐을 잠시라도 잊는 것이 행복해 추위도 잊은 채 걷고 있었다.

누군가의 훅~ 치고 들어온 질문 하나가 내가 왜 걷는가에 대한 근복적인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최근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공효진)의 엄마로 나온 배우 이정은을 만났다. 그녀 역시 취미이자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산책이라고 했다.


걷는 게 뭐가 좋냐고 물을수도 모른다. 하지만 외롭더라도 혼자 걸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처음엔 혼자 걷는 게 어색하고 뭔가 외로운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보이지 않던 나무와 새들이 짹짹 거리는 소리 그리고 하늘이 보일 것이다.


바쁜 일상에 치여 푸른 하늘 한 번 볼 여유 없이 살아온 우리의 삶에 문득 잊고 있었던, 가장 가까이 있던 자연의 즐거움이 성큼 현실로 다가온다. 현실의 짐에 시나브로 멍들어가고 있는 당신의 마음을 치유하는 좋은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올해 따뜻했던 가을바람과 매서운 겨울바람이 나에게 그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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