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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개라니... 진짜 현타가 왔다

예비산모 記. 3

by 시호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처절한 진실 중 하나, 내가 '난저'라는 것이다.

몇 차례의 거듭된 실패와 계유(계류 유산), 화유(화학적 유산) 등을 다 겪고 나니 인생사 내 뜻대로 되는건 하나도 없구나하는 생각에 털석 주저않고 싶은 순간이 너무도 많이 찾아왔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바꿀 수 없는 상황들에 패배감을 겪게된다.


그리고 한달여의 장기요법을 통해 3개의 난자가 채취됐다. 전(前) 회차에서는 단 1개의 난자가 채취됐던 터라, 3개도 감지덕지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난포가 7개나 보인다는 소식에 혹시 나도 '난자 냉동'이라는 걸 처음 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하는 실낱같은 기대를 가져보았으나...... 채취된 갯수는 단 3개. 물론 이것도 감사한 갯수임을 안다. 당연히 감사의 마음을 가졌다.


3일 뒤 이식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처음엔 몰랐지만 병원을 찾는 횟수가 많아질 수록, 나만 이런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이렇게 많은 부부들이 임신을 위해 병원을 찾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날도 역시나 딜레이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 오래 기다렸다며 나에게 건넨 간호사 선생님의 한 마디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털컹 내려앉았다.


"많이 기다리셨죠? 오늘따라 앞서 진행된 난자 채취에서 갯수가 너무 많이 나와 시간이 오래걸였어요. 40개나 나오다니 저희도 놀랐다니까요."


40개라니, 40개라니…

난 전전 회차에서 딱 1개 나왔는데... 아,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현타'가 왔다.

알고보니 이 환자뿐 아니라 이 환자 앞 환자는 32개, 그 앞 환자는 24개가 나와 오늘따라 난자채취가 평소보다 딜레이된 것이었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다고하지만 참.. 그 숫자를 듣는 순간... 마음이 턱 하고 내려앉았다.


"이 환자분은 이제 40개 냉동하고 이후부터는 이식만 진행하시겠죠."


아...

처음 난자를 냉동할 경우 난자 한개 냉동에 수십만원, 갯수가 늘어날 수록 비용도 늘어난다는 말을 듣고 꼭 냉동을 해야하나 싶었지만... 그것은 기우. 난자냉동, 그것도 알고보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했다.


무려 40개의 난자를 채취한 그 예비산모를 보며, 난 또 한 번 내려앉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그래도 나한테는 고맙게도 나와준 3개의 난자가 있으니까. 그중 똘똘한 친구 하나만 있으면 되니까.."


'예비산모'의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모르는 것 투성이이고, 무엇보다 공부처럼 내가 열심히 한다고 성과가 보장되지도 않는다. 어느 것하나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쌓여가는 실패의 숫자를 딛고 나는 또 마음을 추스리며 내 배에 주삿바늘을 찔렀다. 착상에 도움을 주는 주사라고 한다. 이 친구가 정말 도움이 되길, 나는 또 한 번 '예비' 꼬리표를 이번에는 뗄수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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