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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주는 건 고맙지만 선약주의"라는 이정은

by 시호

짧지 않은 시간, 사회 생활을 하다보니 가장 힘든 건 '사람'이었다. 일이 힘든 건 어떻게든 견딜 수 있었지만, 사람이 힘든 건 그야말로 답이 없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그냥 관둘 수도 없는 문제였다. 소위 말하는 먹고 살 걱정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과연 어느 누가 아무 대책 없이 회사를 관둘 수 있을까.


그래서 버티고 버텼다. 그러다보니 좋은 사람과 만나는 시간도 생겼고, 요즘에는 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실감하고 있다. 최근에는 올 한해 영화 '기생충'과 tvN '타인은 지옥이다', JTBC '눈이 부시게' 그리고 KBS2 '동백꽃 필 무렵'을 통해 큰 울림을 선사한 배우 이정은을 만났다.


그에게 나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겠지만, 그가 해준 말은 내 가슴을 파고 들며 특별한 만남으로 기억됐다.


올 한해 너무도 뜨거운 활약을 보여줬기에 영화 드라마 등 각 분야에서 섭외요청이 많겠다는 말에 그는 "찾아주시는 건 고맙지만 선약주의라.. 그 기회를 다 잡는다면 욕심인 것 같다"고 했다.


'선약주의'라...


그 말이 너무 좋았다. 배신이 난무하고 사람과 사람 간의 신뢰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요즘, 작품을 고르는데 있어 돈을 얼마나 주느냐 혹은 얼마나 화제성이 있는 작품이냐보다 그간 친분을 쌓아온 사람들과의 믿음이 더 중요하다는 말... 인기를 얻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의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그가 더 대단해 보였다.


물론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이정은이란 배우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사람과의 의리를 중시한다는 점이 깊게 각인됐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고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 당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물론 내가 100을 줬다고 상대방이 100을 다 돌려주길 바랄 순 없다. 마음이라는 것이 내가 이만큼 줬다고 상대방도 똑같이 돌려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인생의 회의가 들 만큼 믿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하게 된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더욱 사람 믿는 것이 어려워진다. 작품을 고르는데 있어 '선약주의'라는 이정은처럼, 나 역시 내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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