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카가 "안녕하세요"라고 했다..

(ft. 조카의 꿈이 담긴 그림)

by 시호

난 조카 바보다. 결혼 전부터 같이 산 언니가 시집을 가게 됐지만, 눈치없이 언니의 신혼집에 더부살이를 했다. 세간의 시선에 난 분명 언니와 형부의 달달한 신혼 시절에 꼽사리 낀 눈치없는 동생이겠지만, 사람들이 물을 때면 난 늘 그들이 원해서 함께 살았다고 주장했다.


진실이 뭐 중요한가. 결국 난 언니와 꽤나 오래 시간을 함께 했고 너무 소중했던 순간들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말 눈처럼 하얗고 나와는 달리 (형부를 닮아) 눈이 땡그란, 사랑스러운 조카가 태어났다. 신생아 시절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봐도 예뻤다. 물론 지금은 맨날 땡볕에서 뛰어노느라 초콜릿처럼 까만 아이가 됐지만 말이다.


그 아이에게 있어 나도 엄마였다. 어린 시절 늘 함께였기 때문이다. 바쁜 형부를 대신해 조카가 아플 때면 같이 돌보기도 했으니. 그래서인지 조카는 2,3살까지 나와 언니를 모두 엄마라고 불렀다. 아이를 낳고 허리가 안 좋은 언니를 대신해 포대기를 하고 다니기도 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런 조카가 어느덧 초등학교 3학년이 됐다. 내가 나이드는 것은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데 아이들이 크는 것을 보면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은 순간이 너무 많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도 독립이란 것을 하게 됐고, 시간이 맞아 최근 언니의 집을 찾았다. 여전히 나에게는 내집 같은 그곳을.


'띠리릭~'


학원을 다녀온 조카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이내 나를 발견하곤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 이 충격적인 "안녕하세요"라니...


갑자기 내 딸 같던 조카와 마음의 거리가 어마무시하게 멀어진 느낌이었다. 왜이렇게 섭섭한 마음이 들던지. 내 자식은 아니지만, 품 안의 자식 같았던 조카가 너무도 예의를 갖춘 인사를 건넨 것에 괜시리 섭섭한 마음이 자라났다.


그러면서 문득 언니의 말이 생각났다. 딸 하나를 둔 언니에게 주변 아줌마들은 맨날 아이만 바라보고 살다 문득 외로운 순간이 올거라고 경고 아닌 경고를 했다. "중학생이 뭐야,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엄마와 말도 잘 안하고 방문도 닫아"라고.


우리 조카에게도 사춘기라는 것이 찾아와 언니 그리고 나에게 조금은 거리를 두는 순간이 찾아오겠지. 그런 때는 또 얼마나 마음이 쿵 하고 가라앉을까. 벌써부터 두려워졌다.


내가 나이드는 것도 두렵지만, 조카가 부쩍 커버리는 게 너무도 싫어지는 요즘이다.


시간아, 멈추어다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찾아주는 건 고맙지만 선약주의"라는 이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