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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프리 yefree Dec 04. 2022

자녀와 여행할 때 제발 '이 말'만은 하지 마세요

자식들은 100% 공감할 말


코타키나발루의 석양 하늘을 앞에 두고, 해변가에서 미친 듯이 서로 싸우는 한국인 모녀를 보신 적 있으세요? 그게 바로 저랑 저희 엄마입니다.




시작은 좋았다. 아직 싸울 건덕지가 생기지 않았으니까. 나의 신경을 자극한 엄마의 그 '말, 말, 말'!


딸래미는 전 세계 구석구석을 많이 누벼봤지만, 엄마는 그러질 못했다는 미안함이 항상 있었다. 그래서 엄마도 좋은 곳에 가서 리프레시하면 어떨까 싶어, 아름다운 해변과 노을을 선사하는 코타키나발루를 선택했다.


그중에서도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던 '패러세일링'을 탔다. 생각보다 높이 날아 발 밑의 보트가 장난감처럼 보였다. 더욱 스릴을 주기 위하여, 일부러 바닷물에 살짝 빠트리기도 하는데, 그땐 솔직히 무섭다. 바다에 떠다니는 해파리들이 바로 보여서, 쏘이진 않을까 하는 심장 쫄깃함도 느낄 수 있다.



"나리야~~! 이런 멋진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줘서 너무 고마워, 마치 내가 새가 된 기분이야"라고 멋진 하늘과 마주한 엄마가 얘기했다. 아, 뿌듯하다. 엄마가 이렇게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좋아해 주니까 패러세일링 하길 백 번 천 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말만 했으면 완벽한 모녀 여행이었을 텐데, 엄마는 이상하게도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그래도 볼 건 제주도가 더 많다"는 뚱딴지 같은 실언을 했다. '아니, 본인이 새가 된 것 같다며 좋아할 땐 언제고, 뭐? 볼 건 제주도가 더 많다고? 무슨 소리야 저게 도대체' 나로썬 저렇게 말하는 엄마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 다 즐겨놓고 맥 빠지게 무슨 소리야. 그렇게 볼 게 제주도가 더 많으면 제주도를 가지. 뭣하러 코타키나발루까지 와서 그런 말을 해?"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너는 애가 좀 예민한 것 같애."


예민이라는 단어에 발작 버튼이 딸깍 눌릴 뻔했지만, 참았다. 엄마. 나도 코타키나발루는 처음이거든? 내 첫 여행을 망치지 말아 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해변을 굽이 굽이 찾아가 해질녘 하늘을 눈과 카메라 렌즈에 한껏 담고 있었다. 그때 엄마가 또 옆에서 "강릉 앞바다랑 뭐 비슷하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한 번은 나도 어찌 저찌 참을 수 있는데, 두 번이나 저런 말을 들으니 참고 참던 게 폭발했다.


"엄마!!!!!!!! 내가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잖아. 이럴 거면 국내 여행만 하지, 뭣 하러 해외여행 나와서 사람 초를 치냐고. 한국에서 느낄 수 있는 거랑 해외에서 느낄 수 있는 건 또 다르잖아. 코타키나발루에 왔으면 여기에만 집중을 해야지. 왜 자꾸 국내랑 비교를 하는 건데? 그렇게 국내가 좋으면 앞으로 국내여행만 해 엄마는."


"니는 애가 뭘 이런 걸 갖고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 말도 못 하니? 그냥 혼잣말처럼 강릉 앞바다랑 비슷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걸, 니는 애가 내 뱃속에서 나왔지만 나랑 다르게 왜 이렇게 예민한 건지 모르겠다."


"예민? 엄마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엄마가 날 예민하게 만들잖아.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봐. 나도 힘들게 검색하고 엄마까지 챙기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엄마는 옆에서 쫑알쫑알 불평만 하고 이럴 거면 다신 여행 같이 오지 말자"


첫 코타키나발루 여행인데 개 망쳤다. 너무 짜증 나고 화가 났다. 이런 말 하면 불효녀 같지만, 정말 그 자리에 엄마만 두고 혼자서만 택시 타고 집에 오고 싶었다. 영어도 할 줄 모르셔서 나 아니면 정말 국제미아가 될 수 있기에, 돌아오는 동안 말 한마디 안 하고 왔다.


아니, 도대체 부모님들은 왜 저런 말을 하실까? 마치 기분 좋게 외식해놓고, 가게를 나오자마자 '어유, 그래도 집에서 해 먹는 게 더 낫다 야, 여기는 양도 적고 가격은 또 왜 그렇게 비싸대니?'라고 찬물을 확 끼얹는 격이다.


같이 오지 못한 아빠에 대한 미안함인가? 아니면 여유롭게 여행지에서 돈을 쓰는 것에 대한 죄책감일까?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상쇄시키기 위해서 어쩌면 부모님들은 무의식적으로 이 여행이 맘에 들지 않는 이유를 찾는 거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 그래도 좀! 제발 이런 말은 자제해주세요. 진짜 머리부터 발끝까지 힘이 다 빠지는 느낌입니다. 부모님들이 보시기에 저희는 디지털에 친숙한 세대여서, 뚝딱뚝딱 해외여행도 쉽게 준비한다고 생각하실 것 같은데요.


저희도 엄청나게 검색하고 최고의 계획을 짜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다 이 말입니다. 부모님들의 입맛을 고려해서 어른들이 좋아할만한 현지 식당을 찾고, 평점을 보고, 후기를 참고해서 엄선합니다. 또, 연세가 있는 부모님들이 힘들어할까 봐 최소한의 동선으로 코스를 짜고, 중간중간 휴식 할 수 있는 것까지 고려합니다.


나처럼 좋은 것 많이 보고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자식의 마음 이것 하나만 헤아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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