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뻔뻔함이 필요한 이유
얼마 전, 흥미로운 실험 영상을 봤다. 면접관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한쪽에는 차가운 음료를 다른 쪽에는 따뜻한 음료를 마시게 한 뒤 면접을 보게 했다. 결과는 따뜻한 음료를 마셨던 면접관들이 더욱 지원자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음료의 온도만 차이 났을 뿐인데, 누군가의 밥벌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게 실로 놀라웠다.
나도 쌩 신입 시절 면접장에 들어가기 전에 음료수를 사갔던 적이 있다. 저 실험 영상 때문은 아니었고 외국계에서 오래 근무하신 분의 조언이 그 시작이었다. 취업이 너무 절실했던 나는 경력이 없는 텅텅 빈 이력서를 들고 첨삭을 받으러 갔다. 나의 이력서를 한참 들여다보시더니 이내 내려두고 한마디 하셨다. “그냥 면접 들어가기 전에 음료수라도 하나 들고 가서 인사해 보세요”
예?
현란한 취업 컨설팅을 기대했는데, 웬 음료수? 그분의 표정을 빠르게 스캔해보니 농담하시는 것 같진 않았다. 마침, 그 다음 주에 인턴 면접도 잡혀있어 조언대로 해야 할지 말지 생각이 복잡해졌다. ‘아니, 김영란법이니 뭐니 해서 말도 많은데, 음료수를 사들고 가라고? 마치 나 좀 잘 봐주십쇼 뇌물이라도 바치는 것 같잖아. 이렇게까지 창피함을 무릅쓰고 갔는데, 불합격하면? 면접관들이 아~ 그 음료수까지 사 왔는데 떨어진 애?라고 비웃으면 어떡해’
면접 날, 여유 있게 도착하여 걸어가는데 마침 눈앞에 CU편의점이 보였다. 에라이, 모르겠다. 간절했던 나는 어느새 유리병에 담긴 따뜻한 도라지배 음료를 계산하고 있었다. ‘뭐, 싫어하시기야 하겠어? 되면 좋은 거고 안되도 3,000원 밖에 안 하는데’ 그렇게 면접장에 갔더니, 그 손에 든 봉지는 뭐냐고 먼저 여쭤봐주셨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아, 요즘 미세먼지랑 화..황사가 심한데 도라지가 기관지에 좋대요. 드시고 시작하면 조..좋을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면접관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멘트가 입에서 얼레벌레 나왔다. 무슨 도라지배즙 홍보대사라도 된 줄?
내가 음료를 건네자 면접관 두 분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당황한 표정을 살짝 지으시더니 이내 빵 터지셨다. “수많은 면접자들을 봤지만 이렇게 음료수를 들고 온 분은 처음이에요” “아, 도라지가 기관지에 좋대요? 그럼 당장 마셔야겠네~ㅎㅎ” 신입의 패기를 가상하고 귀엽게 봐주셨던 것 같다. 음료수 효과 덕분인진 모르겠으나, 면접 분위기는 한층 부드러워졌고 물 흐르듯 편하게 흘러갔다. 결과는 그다음 날 아침, 합격했다는 전화로 받았다.
물론 저 음료수 하나로 내가 뽑힌 건 아니었을 거다. 훗날 다른 면접에도 음료수를 사들고 간 적이 있었지만 불합격을 받았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음료수가 아니라, 자세와 마음가짐이다. 나는 특히나 요즘 같은 시대엔 더욱 ‘뻔뻔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실패할까 봐 두려워,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등등 갖은 이유로 우리는 도전 앞에서 우물쭈물 망설인다. 하지만 망설임은 그냥 시간을 허송세월 흘러가게 할 뿐이다. 결과가 어찌 되든, 얼굴에 철판 깔고 일단 들이밀어보는 거다. 밑져야 본전이다. 남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고, 우리의 행동에 크게 의미 부여하지 않는다.
나는 ‘음료수’를 가지고 뻔뻔해졌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은 ‘무엇’으로 뻔뻔해질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Photo by Bobby Donald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