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지키며 사는 친구 초대로 다섯 친구들과 함께 ktx 기차를 타고 1박 2일 정읍에 다녀오는 기차 안에서 쓴다.
토요일 낮 12시쯤 정읍역에 도착하니 m과 d의 여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여동생들의 차를 나누어 타고
정읍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상동의 "밥보"로 갔다.
어느새 늙어가는 친구들 몇, 환한 미소로 반기며 맞는다.
음식의 고장답게 밥이 보약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밥보"는 나오는 음식마다 깔끔하고 맛나고 양도 아주 적당했으므로 우리 모두 매우 흡족한 점심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내장산으로 갔다.
지난해도 이번 가을에도 석촌호수의 단풍은 그다지 곱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난히도 청명하고 화창한 날씨에 눈길 닿는 곳마다 가을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붉게 물든 가을 숲의 절정에 우리는 저절로 탄성을 내지르곤 했다.
옛 친구들의 활짝 핀 환호가 열여섯 시절인 듯 드높고 신이 났다. 해맑았다.
때 맞추어 고향에 와서 절정의 가을과 마주친 우리는 저절로 환해져서 시절의 눈부심에 흠뻑 취한 시간이었다.
내장사에서 나와 s네 농장으로 갔다. 붉은 홍시감을 매단 감나무들이 어서 오라며 우리를 맞았다.
우리는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욕심껏 붉은 대봉감을 땄다.
며칠 전 서울 삼성병원에서 시술을 받고 왔다는 s는 걷는 모습이 불편해 보였다. 다리가 아픈데도 옛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내장산 단풍이 다 지기 전에,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초대했다며 미소 짓는 s는 만 이천여 평의 수려한 칠보의 산과 밭에서 채집한 죽순이며 고사리, 취나물, 양회깐, 깻잎, 배추, 쪽파, 갓 등.. 온갖 먹거리들과 제주도에 사는 아들이 보내준 생선과 돼지갈비로 한 상 가득 고향의 밥상을 차려 냈다.
초등 교장으로 퇴직한 그녀 남편이 조곤조곤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주던 지난했던 옛이야기보따리에 탄식하고 감탄하며 새삼 친구 부부의 오랜 삶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시간이었다.
선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아름답게 늙어가는 부부의 모습을 건너다보며 핸드폰 카메라에 소소한 그 정경들을 나는 채집하듯 담곤 했다.
일요일 이른 아침잠에서 깨어 b과 y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주변 텃밭으로 향했다.
서늘하고 쌀쌀해도 쨍하니 맑은 공기에 기분이 상쾌했다.
속이 꽉 찬 배추 한 포기와 무 2개를 뽑고 쪽파도 한 줌 허리 굽혀 뽑았다.
몸이 아파 일이 무서워진 s의 갖은 심부름 요구에도 싫은 내색조차 한 번 보인 적 없다는 그녀의 남편이 어쩌면 열반한 부처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놀랍고 부럽고 경이로운 삶이었다.
초등 5학년 무렵, 보증을 서다 재산을 모두 잃어 가족을 천지사방 흩어지게 한 부친 탓에 어머니를 잃고 수도 없이 그는 전학을 다녀야 했더란다.
이제 와 세어보니 아흔아홉 번이나 이사를 했더란다.
친구를 사귀지 못해 쓸쓸하고 외로운 시절, 어린 마음에 사라진 집과 땅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그는 틈만 나면 부동산을 기웃거리곤 했단다.
마침내 그는 피나는 공부와 노력으로 일만 이천 여평의 땅과 효자 같은 상가도 한 채, 집도 두어 채 마련하게 되었단다.
그는 너른 땅에 씨 뿌리고 가꾸며 거두는 부지런한 사람.
애써 키운 것들을 이리저리 퍼 나르는, 손이 큰 아내의 묵묵한 그림자 같은 사람.
동트는 고향의 수려한 새벽 숲처럼 늘 고요하고 맑고 평화로운 사람.
일요일의 오케스트라 협연 합창 공연을 해야 해서 토요일 밥보에서 점심만 함께 하고 간 교직을 은퇴한 친구 h와 y, 그리고 js.
주말 이틀 동안을 언니와 언니 친구들을 위해 시간 내어 안내하고 운전하고 따뜻하게 챙기며 우리 모두의 동생이 되어 기쁨을 준 m의 여동생 엽렵한 ji도 모두 고맙고 사랑스럽다.
선하고 눈부신 인연들이 이토록 곱게 주변을 물들이는 아름다운 세상인데 이제부터는 찡그리지도 불평하지도 속상해하지도 말고 매사에 그저 감사하며 웃으며 씩씩하게 남은 생을 살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