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적
작은언니는 고 3, 나는 중 2였다.
유유히 흐르는 동진강을 옆에 끼고 새로 지어 눈부신 여학교 교정이 거기 있었다.
학교 뒤 탱자 울타리를 지나 나지막한 황톳길 고개 너머 청대문 집 작은 방에서 언니랑 자취를 했다.
언니의 담임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기로 한 오후, 앉은뱅이 둥근 밥상 위에 새하얀 테이블보를 씌우고 자취방을 오래 쓸고 닦았다.
민들레 두어 송이 꺾어다 우유병에 꽂아서 읽고 있던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테이블보로 가린 밥상 위에 올려놓았다.
뒤꼍으로 돌아앉은 작고 외진 방이 새하얀 테이블보와 꽃병과 펼쳐진 책으로 봄날처럼 금세 화사해졌다.
그 봄에 동진강변에 햇쑥이 지천으로 돋아나 바구니를 들고 쑥을 캐러 갔다.
쑥을 캐 온 저물녘에 언니는 쑥 한 줌을 씻어 냄비에 쑥밥을 지었다.
얼마나 맛있던지 봄이면 봄마다 그 쑥 향기와 쌉싸래한 풍미가 몸살 나게 그리웠다.
올 삼월에도 나는 생협에서 어린 쑥을 사다가 쑥밥을 지었다.
하지만 천천히 음미하며 씹어보아도 열네 살 적 그 맛이 아니었다. 어쩐지 그저 밋밋하고 헛헛하기만 했다.
춥고 배고프던 어린 시절의 입맛과 온갖 먹거리를 섭렵해 온 시든 입맛이 어찌 같을 수가 있겠는가.
분식이래야 찐빵과 만두와 꽈배기가 전부였던 그 시절의 학교 앞다리 건너 천변의 그 쓰러질 듯 허름한 가게들도 스치듯 생각이 난다.
동진강변의 핏빛 일몰과 주말이면 시오리 길 그리운 본가로 달려가던 눈부신 신작로 길.
민들레꽃 제비꽃 삐비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살랑대던 그 둑길에
노랑나비 흰나비 호랑나비 흐드러지게 날아오르던 열네 살 적
그 봄날의 풍경들이 아련하게 피어오른다.
그해 유월 초순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사춘기였던 나는 갑자기 견딜 수가 없었다.
집 가까이에 있는 막내 숙부가 교장인 작은 학교로 스스로 찾아가 불현듯 전학을 하고 말았다.
한창 자랄 나이의 자취생이 연탄불이 시들면 밥을 지을 수가 없었다. 아침도 거르고 도시락도 없이 등교하던 그즈음 너무 배가 고파서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때 내가 무작정 새로 지은 신생 학교라 최고의 선생님들을 모신 그 학교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문득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지금의 내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의 흐름이 한 방향을 향해 흘러가는 관성에 의해 지금 여기 이 자리에 닿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열네 살 적 그 푸른 동진강물이 서해 바다로 흘러갔듯이 오늘 내가 마주한 석양의 저 붉디붉은 한강물도 굽이굽이 서해 바다로 흘러가 합수할 것이다.
흐르는 저 강물처럼 내 삶도 흐르고 흘러 나아갈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묵묵히 저 붉디붉은 서쪽을 향해 이렇게 흘러가고 있으니 말이다.
(언니의 개교기념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