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이모님의 명복을 빕니다
늦은 밤, 전주에 사시는 도달(다섯 자매 중 둘째인 이모가 어머니에 이어 태어나자 또 딸이라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왔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연년생 동생인 이모와는 늘 지척에서 한 가족처럼 따뜻하게 서로 돕고 마음을 기대며 더불어 살았다.
어여쁜 딸만 여섯을 둔 이모부는 이모가 아기 낳을 기미가 비칠적마다 간절하게 아들이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두근대는 심장을 가라앉히려 말갛게 마당을 쓸곤 하셨단다.
당신이 손수 베어 엮은 싸리빗자루를 들고 온 동네 고샅고샅을 돌며 환하게 환하게 쓸어내곤 하셨단다.
태어난 아기가 또 딸이라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모부는 빗자루를 팽개치고 주섬주섬 봇짐을 챙겨 들고 어디론가 정처 없이 가출을 하시곤 했단다.
한 두어 달쯤 이리저리 떠돌다가 매번 수척한 모습으로 초라하게 돌아오시곤 했단다.
이런저런 마음고생이 심하셨는데도 마주칠 때마다 늘 잇몸을 보이시며 환하게 웃어주던 선하디 선한 이모의 모습이 떠오른다.
몇 해 전 셋째 이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문상하러 익산에 내려갔다가 깜짝 반가워하시며 내 손을 잡고 글썽이시는 도달이모를 오랜만에 뵈었다.
용돈을 드리려 지갑을 열어보니 현금이 5만 원권 한 장밖에 없었다.
과자라도 사 드시라며 오만 원을 봉투에 넣어 드리고 온 후로 내내 마음이 쓰여 한 번 뵈러 가야지 가 봐야지 하면서 어느새 훌쩍 속절없이 세월은 흐르고 이모는 떠나셨다.
그렇게 소원하시던 아들은 두지 못했지만 어여쁘고 착한 여섯 효녀 딸들에 둘러싸여 말년을 참 따뜻하고 행복하게 살다 가신 도달 이모님(원불교 교도이신)의 극락왕생을 빕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내려갈 수가 없어 큰 오라버니 계좌를 열어 클릭하는 밤.
글성글성 옛 생각이 번져 잠 못 이루며 뒤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