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검은 실과 흰 장미(1)

1. 손님

 


             1. 손님     



 누구든 상관은 없었다.

탁 탁 탁 탁 아침마다 그 소리를 듣게 됐을 때 그 소리의 주인공을 내 파티의 손님으로 조금씩 상상했다. 항상 즐거운 것은 그 과정이다. 나는 공을 들여서 그 소리의 주인공을 상상했다. 충분히 즐기고 싶어서 아주 천천히 그려나갔다.

그녀가 아니어도 전혀 상관이 없었는데 이제 그녀는 가장 중요한 손님이 됐다.     

 

  5월, 계절은 여름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해는 조금씩 더 빨리 떠올랐다.

나는 일몰과 함께 잠들고 동틀 때 깼다.

아주 부지런한 농부처럼 나만의 일을 해 나가는 사람으로

요즘 말로는 새벽형 인간인 셈이다.

물론 작업이 있는 날에는 며칠 밤을 꼬박 지새웠다.

세밀한 작업 후에는 항상 기절할 듯이 나가떨어져 하루를 내리 자버렸다.

죽을만큼 피곤했지만, 만족스러운 작업 후 느끼는 노곤함과 뿌듯함이 가득했다. 흥건한 기쁨에 맘껏 게으름을 피우며 잠들고 침대 위에서 굴러다녔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면 다시 묵직한 힘과 집중력이 온몸에 피어올랐다. 그 상태로 또 며칠 지나면 신경이 곤두서고 어찌할 바 모르고 쩔쩔매게 되는 때가 온다. 사소한 일에도 신경이 곤두섰고 곤두선 신경은 곧 끊어질 듯이 팽팽하게 조여왔다. 곧 터질 때가 된 것이다. 더 견딜 수 없게 되는 날, 뛰쳐나가기 하루 이틀 전부터 다시 온몸의 집중력을 모아서 새로운 작업을 계획하곤 했다.  

농부로 말하자면 나는 근면한 농부이다. 그러나 아무리 근면한 농부라도 늘 풍작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농사는 어쩌면 근면함보다는 우연에 기대는 작업일지 모른다. 전에 없이 날이 좋고 적당한 기온과 바람과 비와 일조량이 맞아떨어지는 해에는, 물론 이렇게 모든 게 딱 적당하게 맞기는 힘들겠지만, 그런 해엔 동네에서 가장 부지런한 농부부터 가장 게으른 농부까지 다들 작황이 좋았다. 반대로 잔인한 태풍이 늦여름 들녘을 할퀴고 지나가면 그해엔 누구도 풍년의 들을 바라볼 수는 없었다.      


  나는 타고났다. 

하지만 항상 자만하지 않는다. 

언제나 상황에 플러스 알파, 또는 마이너스 베타를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만족할 만한 작업을 할 수가 없다. 철저히 준비하고 물색해도 늘 벌어지는 갑작스러운 상황이 생긴다. 이래서 근면함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상상력과 판단력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정신이 또렷할 때 지난 작업을 복기하고 앞으로의 작업을 상상한다. 아주 천천히 곱씹고 또 곱씹는다. 그건 또하나의 즐거움이다.  어떤 사람은 지나간 일들은 모두 잊었다고도 하지만 그것이 그의 최대 실수이고 지금 그가 감옥에 있는 이유이다. 중요한 것은 지난 일을 철저히 복기하고 앞을 대비하는 것, 그래서 절대로 영원히 잡히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바로 살인자다. 나의 작업은 바로 살인이다.     


  정말 나는 타고났을까? 가끔 생각해 본다.

잔인한 아버지와 집요한 엄마를 생각해 보면 타고났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세상의 모든 살인자가 타고나는 것일까? 

“우발적인 살인”이라는 표현이 뉴스에 나올 때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발적 살인이라.... 

어떻게 사람을 우발적으로 죽일 수가 있을까? 파리 한 마리도 우발적으로 죽이지 않는다. 한여름 툇마루에 누워 낮잠을 잘 때 계속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파리의 소리는 몹시 성가시다. 파리 때문에 자꾸만 잠이 달아나면 급기야는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 파리채를 찾아든다. 그리곤 파리를 내리쳐서 잡는다. 이건 우발적인 파리 살해인가? 계획적인 파리 살해인가? 파리채를 휘두르는 순간 마음속에 파리에 대한 증오감이 솟아오른다. 그까짓 파리 한 마리를 내리칠 거면서 순간 우리는 긴장하고 조심하며 파리를 겨냥해 한 번에 성공하기 위해서 힘껏 내리친다. 파리는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이것이 과연 우발적인 사건인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우발적이라는 의미에는 동의하겠지만 그렇다고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사람을 죽이는 것은 파리채로 파리를 내리치는 것과는 아주 다른 것인데 말이다. 타고나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 거북이들이 처음 만나는 사회, 학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