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정된 부품보다 불안한 선장이 되길 원했다
https://brunch.co.kr/@jjsk1357/47
이전글
스무 살의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또래 친구들이 대학 등록금과 취업난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라 불리는 S사의 파란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었다.
기능반 시절, 363일 학교에 갇혀 살았던 고생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명절이면 나오는 두둑한 상여금, 부모님이 친척들 앞에서 "우리 아들 S사 다녀"라고 말할 때의 으쓱함. 누구나 부러워하는 '성공한 고졸 신화', 그게 바로 나였다.
하지만 그 달콤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입사 5년 차, 스물다섯이 되었을 때 나는 묘한 공허함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군복무 기간도 포함이다)
거대하고 정교한 시스템 속에서 내가 하는 일은 정해져 있었다. 0.01mm의 오차를 잡기 위해 밤을 새우고, 없는 길을 만들어내던 '기능반의 야성'은 이곳에서 필요 없었다.
나는 공채 시험을 보고 들어온 그들과는 달리 스카웃 제의로 들어왔음에도 고졸에 그쳤다. 그저 끈기만 필요했으며, 주어진 일을 쳐낼 뿐이였다. 나는 거대한 기계가 멈추지 않고 돌아가게 만드는, 성능 좋은 '부품' 중 하나일 뿐이었다.
퇴근 후 동기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는 대화는 늘 비슷했다. 재테크는 어떻게하고, 앞날의 계획은 이렇고 등.. 언제쯤 진급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회사에서 나의 역할은 설비가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사전 점검 및 유지보수 관리 였다. 그러다 문득 10년 뒤, 20년 뒤의 선배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향 후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저기 앉아 있는 과장님, 차장님이 내 미래일까? 정년까지 버티면 성공한 인생일까? 안정적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년이 다가옴에 따라 어떤 것을 해야겠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다. 회사에서 하는일을 나가서 써먹을 순 없었고 그저 연명하기 위해 다른 중소기업에 경력직으로 들어가는 것 뿐이였다. 누군가는 그게 너무 당연한거 아니냐고 얘기할지 모르지만, 당시 나는 100세 시대에 크게 꽂혀 있었다.
그렇게 해서는 60세 정도면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나이먹어서까지 일 할 생각은 없다. 영앤리치.. 경제적 자유를 꿈꿨다.
배고플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가슴이 뛰지 않았다. 기능반 시절, 어렵더라도 내 손으로 직접 해결해 내던 그 치열했던 내가, 이 안락한 온실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내 인생의 핸들을 내가 잡고 싶은가, 아니면 남이 운전하는 버스에 타고 싶은가?"
질문은 단순했지만, 답을 내리기까진 꽤 오랜 고민이 필요했다. 그러다 여자친구(현재 와이프)의 말 한마디가 방아쇠를 당겼다. '계속 이렇게 여유로웠으면 좋을텐데..' 몸에 전율이 돋았다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내 안의 '야생 수저' 본능은 결국 안정을 거부했다.
"저 그만두겠습니다."
스물다섯 8월, 나는 사표를 던졌다. 부모님은 펄쩍 뛰셨다. 친구들은 미쳤다고 했다. "야, 남들은 못 들어가서 안달인 곳을 왜 나와? 배가 불렀냐?"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안정된 가난'보다는 '불안한 자유'가 나았다. 월급이라는 마약에 취해 내 시간을 팔아넘기는 삶을 끝내고 싶었다.
내 손에는 차를사고, 대학 등록금을 대고, 각종 취미생활을 하면서도 그동안 악착같이 모은 돈 8,000만 원이 쥐어져 있었다. 스물다섯 청년에게는 꽤나 큰돈이었다.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1년 363일을 버텨낸 그 '기능반의 끈기'라면, 정글 밖에서도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고. 아니, 오히려 더 크게 성공할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나는 호기롭게 야생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8,000만 원이라는 종잣돈은 나를 엄청난 부의 세계로 데려다주는 듯했다. 퇴사 후 만난 '비트코인'이라는 신세계는 내가 S사에서 10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단숨에 안겨줄 것처럼 보였다.
비트코인 투자를 바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처음엔 노후까지 일할 수 있는 부동산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홍보의 중요성을 깨닫고 나의 기둥이 되어줄 블로그 마케팅을 배우기 시작했다.
10개월을 부동산일을 하다 마케팅으로 수익화 할 수 있다는 제휴마케팅 외 온갖 온라인 수익화에 뛰어들었다. 이때 국내 SNS플랫폼들은 거짐다 점령했던 것 같다. 그러다 한 스승을 만나게 되는데 그로 인해 비트코인 투자를 접하게 되었다.
비트코인은 순식간에 뛰어올라 내 종잣돈 8천만원을 1억 2천까지 끌어올려 주었고, 처음엔 너무 허탈했다. 5년을 일해 번돈을 단 몇달만에 50%나 되는 수익을 얻었으니까. 나는 새로운 코인투자를 제안 받아 그곳에 올인 했다.
그때는 몰랐다. 핸들을 내가 잡는다는 건, 쏟아지는 폭우와 몰아치는 폭풍우도 온전히 내 몫이라는 것을. S사라는 거대한 우산이 사라진 뒤, 나는 비로소 진짜 세상의 매운맛을 보게 된다.
내 인생의 가장 화려했던 날들을 떠나보내고 곧이어 찾아온 처참한 추락. 그 롤러코스터의 시작점은 바로 그날, 파란 사원증을 반납하고 정문을 걸어 나오던 스물다섯의 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