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598년부터 중국 통일왕조인 수나라와 당나라와 여러 차례 전쟁을 했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 하기전까지 대부분 적군을 격퇴하였으며, 특히 살수대첩, 안시성 전투등 중국 황제의 친정을 막아낸 사례는 고려.조선 시대부터 높게 평가되어 왔다. 최근에는 연개소문이 661~662년 2차 고당전쟁에서 총관급 장수들을 전사시키며 승리를 거둔 것도 재평가 되고 있다.
그런데 삼국사기나 다른 기록들에서 고구려가 공성전이 아니거나, 혹은 을지문덕,연개소문,안시성주 같이 유명한 인물이 지휘하지 않은 전투에서 패한 사례들은 다소 의아하게 보기도 한다. 그렇기에 혹자는 고구려가 평야에서 벌이는 야전이나 대회전에서는 당군에게 크게 밀린다고 보기도 한다. 아무래도 고구려 하면 기마병이 떠오르고 우리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로 평가 받으니 평야 전투에서 패했다는게 의아할수 있다.
하지만 당시 수.당의 군사력은 세계 최강이다. 고구려군이 강군이라 해도, 남북조시대를 통일한 수나라군과 돌궐 등 유목민족을 격파한 당나라군과 전투를 벌인다고 승리를 장담할수는 없다. 또한 징집한 병사 수도 고구려 보다 훨씬 많다. 그런데 굳이 고구려가 무모하게 야전에서만 싸울 이유는 적다. 고구려 입장에서는 요동성,안시성 등 성을 중심으로 방어를 하고 성들 사이에 지원군을 파견하는등 수성과 역습을 중심으로 전투를 벌이는 것이 훨씬 유효하다. 즉 고구려가 백제나 신라와 야전을 한 것 처럼 하기에는 고구려 입장에서는 무리가 많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고구려의 전력은 막강하다. 645년 1차 고당전쟁 당시 백암성 인근에서 고구려 기병1)과 당의 정예기병을 맞붙은 사례가 있다.
계필하력이 강한 기병 8백 명으로 고구려군과 맞붙어 싸웠다.-책부원귀
오골성에서 군사 1만여 명을 파견하여 백암성을 성원하자 장군인 계필하력이 강한 기병 8백 명을 데리고 이들을 쳤는데, 계필하력은 몸을 던져서 그들의 진지에 빠졌다가 창에 허리를 맞았다.-신당서
645년 1차 고당전쟁 당시, 백암성 인근에서 백암성에 파견된 당군과 전투가 벌였다. 고구려군은 당의 맹장 계필하력이 이끄는 당의 최정예 맞서 크게 격파하여 계필하력를 창에 찌를정도로 강한 전투력을 보였다. 기병끼리 정면대결으로 장수에게 창을 찌를정도로 타격을 입힐정도라면 고구려 기병이 상당히 막강했다는것을 보여준다. 즉 고구려 또한 나름 강한 군사력을 소유 했기에 수당과 떄때로 야전을 벌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중 가장 크게 성공한 전투가 살수대첩이다. 특히 크게 패한 야전인 주필산 전투나 설하수 전투의 경우에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살수대첩 처럼 적을 단 번에 꺾으면 전세가 역전될것이라 생각해 벌인것으로 생각된다.
이튿날 고연수 등은 단지 이세적의 군대가 적어 보이므로, 군대를 이끌고 싸우고자 하였다. 황제가 장손무기의 군대에서 먼지가 일어나는 것을 멀리서 보고, 명하여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깃발을 들도록 하였으니, 여러 군대가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진군하였다. 고연수 등이 두려워하며 군대를 나누어 이를 막고자 하였으나 그 진영은 이미 혼란에 빠졌다-삼국사기
남건은 병사 5만에게 부여를 치게 했는데, 이적이 살하수에서 격파하고 5천여 명의 목을 베고 포로로 3만 명을 잡고 기계와 우마를 빼앗은 것 역시 그와 비슷하였다. 대행성으로 나아가 빼앗았다.-신당서
다만 이 전투들도 고구려가 수당 보다 월등히 야전에 약하다고는 할수 없다. 당태종이나 장손무기,이적등이 워낙 장수로서 능력이 대단한 점도 무시할수 없다.
또한 돌궐이나 백제 사례를 보면 나름 고구려가 가장 선방한 경우라 할수 있다. 소정방이 평야에서 적은 보병으로 많은 돌궐기병을 격파한 경우나 백제를 멸망시킬때 백제군이 크게 패해 순식간에 사비성으로 진격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당이 전쟁한 국가중에 고구려가 제일 야전에서 선전한 경우가 아닌가 싶다.
몇몇 평야 전투에서 고구려가 패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고구려가 멸망한 668년 3차 고당 전쟁을 제외하면 고구려는 수당군을 모두 격퇴하였다. 평야 전투에서 몇번은 패배했을지언정 요동 방어선에서부터 압록강,평양 까지 도달하는 긴 전선을 가진 전쟁에서 고구려는 이긴 것이다. 결코 고구려가 야전 몇번 졌다고 부끄러워 할 것이 전혀 아니다. 더군다나 그 유명한 을지문덕의 살수대첩과 재조명 받는 연개소문의 사수전투 역시 야전이라 할수 있다. 어쩌면 야전에서 크게 밀린다는 것 조차 과소평가 일수 있다.
참고 서적
임용한, 한국고대전쟁사 2
서영교, 고대 동아시아 세계대전
1) 기록상 고구려군이라 적혀 있고 기병 이라고는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이 글에서는 고대 동아시아 세계 대전에 나온 서영교 선생의 견해를 참고해 그렇게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