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결혼 기념일

"난 여보랑 보낸 결혼 기념일중 기억나는 날이 없어."

by JJ teacher

아내와 나는 11월에 결혼했다.

정확히 말하면 11월 8일, 결혼기념일만 생각하면 나는 아내에게 항상 미안하고, 아내는 나에게 언제나 섭섭하다. 그동안 제대로 결혼기념일을 챙겨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5년간만 놓고 보면 그 미안함은 배가 된다.


어느 해는 대학원 박사과정 준비를 한다고 독서실에 틀어박혀 있었고,

어는 해는 부설초등학교 교사 전형을 준비한다고,

어느 해는 제주도로 이주하자고 아내에게 시위를 하던 시기였고,

어느 해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기념일을 챙길 수 없었고,

또 어느 해는 임용고시를 다시 본다고 결혼 기념일 따위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난 여보랑 보낸 결혼 기념일중 기억나는 날이 없어."
사실, 아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제주도 임용고시에 최종 합격하고 찾아온 작년 결혼 기념일, 아내는 작정한 듯 말했다.

"이번 결혼 기념일 날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해줘."
나는 아내의 요구에 따라 보석 전문점에서 자그마치!! 18K 귀걸이를 사주고, 좋은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이것으로 그동안의 섭섭함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결혼 기념일을 불과 5일 앞둔 오늘, 아내가 말했다.

난 여보랑 보낸 결혼 기념일중 기억나는 날이 없어.
(벌써 잊은 거야? 지금 하고 있는 귀걸이는 대체 누가 해준 거야?)

저녁 내내 제주도 최고급 호텔의 다이닝 룸을 검색하고 있는 아내를 보며 왠지 모를 부담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여보, 여기 어때?"

1인당 12만원이 넘는 가격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4인 기준 그 돈이면 대방어 한 마리를 잡아다가 타운하우스 축제를 벌여도 남을 돈이다.

"조...조....좋네~~~(영혼 1도 없음!)"

내가 썼던 글 중에서 '제주살이의 좋은 점'으로 가성비 좋은 호텔이 많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하나 깜박! 한 것이 있다.

제주도에는 아주, 아주~~! 비싼 호텔도 많다!!

아내와 부부의 연을 맺은 지 12년이 되었지만, 서로 다른 것이 많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서울의 있는 집안에서 자라나 고급스러움을 즐길 줄 아는 아내와 충청도 가난한 공무원 집안에서 태어나 어떤 선택을 해도 가성비를 먼저 생각하는 나! 이 간극은 언제, 어떻게 해야 좁혀질 수 있을지......

결혼 기념일로 들뜬 아내를 보니 오늘 밤, 아내의 기대를 어떻게 충족시켜주어야 할 지 밤새 고민해야겠다. 하지만 나도 이쯤되니 궁금한 것이 있다.

비록 흙수저 출신으로 고급스러움, 세련됨과는 거리가 있고

만 원 한 장을 쓸 때도 몇 번을 고민하는 짠돌이 공무원 남편이지만

결혼기념일 날 아내를 기쁘게 해 주려고 고민하는

남편의 모습을 아내는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비록 자칭이지만

나도 엄연히 사랑꾼이다.

그건 그렇고,

결혼 기념일은 서로 축하하는 날이 아닌가?

왜 나만.....??

연애시절, 참 풋풋했구나.... 우리 이대로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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