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내게는 어려운 너, 제주어(語)

육지것의 제주말 적응기

by JJ teacher

나는 기본적으로 제주병(病)에 걸린 사람이다.

제주도에 살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두고, 서울집을 정리해서 온 가족이 이주했으니 이 병이 얼마나 중증인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나처럼 제주병에 걸린 사람에게는 특징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제주도에 관련된 모든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제주도 바다가 좋고, 오름이 좋고, 사람이 좋고, 음식이 좋고, 삼다수가 좋고...... 심지어 제주 토박이도 좋아하지 않는 바닷바람이 좋으니 그냥 '제주'하면 다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한 가지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 있으니, 바로 제주말(言語)이다.


한 가지 미리 알아두고 시작해야 할 것! 제주도 사람들은 '제주도 방언, 사투리'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자신들이 쓰는 말이 표준어기에 제주어라고 부른다. 매년 제주도교육청에서는 '제주어 말하기'대회가 열리는데 어느 학교의 누가 제주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지를 평가하는 대회이다. 거의 모든 학교가 예선을 거쳐 학교 대표 학생을 참가시키기에 제주도교육청에서 하는 대회 중 가장 큰 대회라고 할 수 있다.

제주어 말하기 대회! 지금까지 살면서 충청어 말하기 대회, 경상어 말하기 대회, 전라어 말하기 대회, 경기어 말하기 대회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기에 나는 이 대회가 참 신기했다. 대회 기간에 학교 대표들은 방과후에 제주 토박이 선생님의 스파르타식 지도를 받으며 몇 달을 연습한 끝에 본선에 나간다. 학생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은 제주에서 나고자란 완벽한 제주 네이티브 스피커이다.


제주도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것을 꿈꿔 왔으니 나에게 제주도 초등교사라는 타이틀은 너무도 자랑스럽다. 하지만 이런 내게 제주도 직장생활의 어려움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 존재했다. 바로 동료교사와의 회의이다. 제주도 말이 억센 것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거기에 제주 토박이 분들은 말이 빠르기까지 하다. 나는 학년회의를 할 때 종종 통역이 필요하다. 언젠가 학년부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저기 죄송한데요...."

하며 말을 끊은 적이 있다. 회의 시간에 별로 말을 하지 않기에 동학년 선생님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모라쿠라가 뭐에요?"

회의시간 내내 이 말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던 내가 질문을 하자 부장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을 보며 말씀하셨다.

"모라쿠라? 이 말이 사투리였어? 그럼 서울말로 뭐라고 해야 하지? 아~! 몰랐니?"

'알았니, 몰랐니?' 할 때의 몰랐니가 모라쿠라였다. 신기한 것은 제주도 토박이분들은 이 말이 제주도 방언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회의 시간에 종종 옆에 앉아 있는 선생님에게

"무슨 뜻이에요?"

라며 해석을 부탁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학년회의를 마치며 부장 선생님은 꼭 이 말을 하신다.

"속았져!"
열심히 회의를 했는데 도대체 뭐가 속았다는 것인지...... 놀랍게도 '속았져' 이 말은 "수고했다."라는 뜻이다.

이러니 내가 통역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SskjsSQKq1t2635251668466538948 (1).jpg "못 알아 듣겠어~~!!"

제주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학급에서도 비슷한 일이 종종 일어난다. 제주도에서 나고자란 아이들끼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숙제 핸? 밥 먹언? 니 어제 뭐핸?"

이라는 말을 한다. 오히려 꼬박꼬박 서울말을 쓰는 나를 신기하게 생각한다. 내가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제주도 담임 선생님만 만났던 학부모들이 신기해 하는 일도 있다. 언젠가 아이들에게 아침마다 '감사일기'를 함께 쓰자고 공책을 사서 돌린 일이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학부모와 상담전화를 하다가 학부모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 어제 아이들 주신 공책이요, 그거 서울에서 사신 거라면서요? 아이가 예쁘다고 좋아하던데."

나는 이 말에 그만 빵 터져서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어머니! 그거 쿠팡에서 산 건데요?"

나는 제주도의 모든 것이 예쁘고 좋아보이는데, 반대로 제주도 토박이 분들은 서울에 대하여 막연한 동경을 갖는 현상! 역시 사람은 자신이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하여 호기심과 환상을 갖는 것 같다. 요즘 내가 서울의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네가 제일 부럽다. 나도 제주도에 살고 싶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심한 듯 말한다.

"그렇게 부러우면 너도 내려오던지~~~!"

이 말 속에는 내가 과감하게 제주도를 선택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다. 제주도에 내려온 지 벌써 4년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이런 것을 보면 나의 제주병은 여전하다.


그건 그렇고......

나는 언제쯤 해석이 필요 없이 회의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을까?

아마

앞으로도 몇 년은 더 헤매야 할 것 같다.

제주말3.jpg 무슨 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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