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혹(不惑)이고 싶다.
오늘 직장에서 불쾌한 일이 있었다. 직장 동료중의 한 분이 내 기분을 상하게 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이런 일이 있었다면 나는 분명히 한바탕 했을 것이다. 피가 거꾸로 솟아오름을 느꼈고, 심장이 두근거려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동료교사도 이 일에 대해 알고는 내게 말했다.
"선생님, 그걸 참으세요? 한마디 하셔야죠!"
옆반 선생님이 나보다 더 분개할 정도로, 그분이 내게 실수를 한 것이 맞았다.
화가 났지만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분이 나한테만 그러겠어?'
라는 생각이었다. 넌지시 그분의 업무 스타일에 대하여 함께 오래한 선배 두 분께 물어 보았다. 모두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시는 모습에 끓어오르는 마음을 접기로 했다. 별다른 잘못없이 인격적인 모욕을 당했고, 그로 인해 내 마음이 비참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퇴근후에 내 표정을 보고
"무슨 일 있어?"
라고 묻는 아내에게도 애써 웃으며
"아니~~"
라고 대답했고, 내 감정의 화살이 아무 잘못없는 아들딸에게 향하지 않기를 끊임없이 신경썼다. 물론 그렇다고 내 마음이 말끔해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속 감정이 요동치고, 피가 솓구치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쉼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공자님께서 나이 40은 불혹이라고 '세상일에 갈팡질팡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이 40을 거쳐 40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 40대가 가장 많이 흔들리는 나이라는 것을 느낀다.
무슨 40대가 불혹(不惑)이야? 만혹(滿惑)이지!
가끔 지나가는 말로 툭하고 명언을 자주 남기는 아내가 내가 쓰는 글을 힐끔 보더니, 한마디 하고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만혹(滿惑)...! 유혹이 가득 찬 나이!
어쩌면 이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흔들리고 싶지 않다. 주변 사람들의 한마디에 상처받고, 우울해지기 싫으며, 그 일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들을 찡그린 얼굴로 대하고 싶지 않다. 예전이었으면 당장 찾아가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사과하세요!"
라고 따졌을 나지만, 수십 번도 더 마음을 가다듬으며 아무렇지 않게 퇴근하고, 가족들과 웃으며 결혼기념일 저녁식사를 하고, 헬스장에서 p.t.를 받고 왔다. 물론 억울하고 서글픈 마음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진심으로 그분을 위해 기도하기로 했다.
'마음속에 얼른 평화가 찾아오기를....'
나일롱 신자라서 부끄럽지만, 천주교 미사시간에 주변에 앉은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있다.
"평화를 빕니다. 평화를 빕니다."
이 말처럼 내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란다. 그래서 남을 미워하고, 미움받지 않기를 바란다.
억울하고 기분 상한 일이 있었지만....
오늘 처음으로 내 자신을 아낌없이 칭찬했다.
"잘했어. 잘 참았어."
40대!
이제는 평균 연령이 높아져서,
분명 흔들리기 쉬운 만혹(滿惑)이자
사춘기와 같은 나이지만,
나에게 40대는 불혹이기를 바란다.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