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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teacher Dec 04. 2021

제주도에서 주말 부부로 산다는 것

의외로 우리의 인생은 길다.

  "정말 부러워요. 제주도에 정착해서도 두 분은 직업이 그대로잖아요."

  아내와 내가 부부 교사인 것을 아는 다른 이주민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굳이 내가 40이 넘은 나이에 임용고시를 다시 보았다고 말하지 않기에, 그들의 눈에 우리가 쉽게 제주도에 정착한 가족으로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역시 공무원이 최고야."
라는 주위의 반응을 보며, 남들이 부러워 할 만큼 제주도에 정착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새삼 느끼고는 한다. 


  제주도가 좋아 이주를 한 가족 중에 주말 부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산에 살 때 친하게 지냈던 아내의 친구 중에도 주말 부부가 있었고, 이곳 애월의 타운하우스에도 주말 부부가 세 가족이나 된다. 브런치 독자분들 중에 제주도로 이주하고 싶은데 주말 부부로 사는 것이 어떤지에 대하여 메일로 물어보시는 분들이 심심치 않게 있는 것을 보면 제주도의 인기는 여전하다. 

  "제주도에서 남편 없이 지내도 될까요?"
  "아이들이 아빠 없이 잘 지낼 수 있을까요?"

  "무섭지는 않을까요?"
  이런 물음들 속에는 제주도 이주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 주위의 주말 부부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다. 아니, 어쩌면 우리 가족보다 제주도를 더 즐기며 지내고 있다. 우선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그때부터는 자유다. 제주도는 작년부터 거의 모든 학교가 전면등교를 하고 있었기에,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돌아올 때까지 마음껏 제주도를 누릴 수가 있다. 아내도 작년에 육아휴직을 했는데, 나와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아침부터 예쁜 카페와 음식점을 찾아 다녔다. 그때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지금도 말한다. 물론 집안일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차를 몰고 제주도의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할 수 있으니 얼마나 특별한 경험이겠는가?

  아이들은 물어볼 것도 없다. 내가 놀란 것은 의외로 아이들이 아빠를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80~90년대처럼 학교가 끝나면 책가방을 집어던지고 동네 아이들과 저녁이 될 때까지 놀고 있으니 아빠가 생각이 날까? 시도 때도 없이 옆집 벨을 눌러대고 타운하우스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며 

  '정말 아이들은 행복하겠구나. 무슨 걱정이 있겠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참고로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은 아이들은 제주도의 자연환경에 별 관심이 없다. 그냥 마음껏 놀 수 있으면 좋다. 제주도는 아이들이 놀기에는 참 좋은 환경이다. 

아이들은 하교후 매일 이렇게 논다

  아빠의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주중에는 육아나 집안일에서 벗어나 일에 집중할 수 있으니 좋다. 그리고... 어찌 되었든 자유 아닌가? 내 의지에 따라 사람들을 마음껏 만날 수 있고, 주중에는 배우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일을 아내와 아이들의 눈치 없이 할 수 있다. 또한 주말마다 제주도를 여행하듯이 내려오니 얼마나 좋을까? 재미있는 것은 내가 타운하우스에 살며 주말에 주말 부부의 집에 차가 주차되어 있던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빠도 주중에는 열심히 일하고 왔으니, 주말 제주도에서는 무조건 관광객 모드로 놀러다니고 싶은 것이다. 우리 타운하우스 주말 부부 세 가족 모두 그렇게 지내고 있다. 같이 저녁 식사 한 번 하려고 해도 집에 있지 않으니 기회가 없다. 

  주말 부부로 지내는 가족을 보며 내가 느낀 것이 하나 더 있다. 주말 부부의 엄마들은 모두 당차고 씩씩하다. 우리 앞집에는 남편이 헬스장을 경영하는 주말 부부가 살고 있는데, 그 여자 분을 보며 자주 놀라고는 했다. 어느 날은 혼자서 주차선을 그리고, 또 어느 날은 에어펌프로 자동차 타이어 공기압을 체크하고는 한다. 필요한 가구는 홈쇼핑으로 주문해서 웬만한 것은 스스로 조립해서 설치한다. 역시 사람은 환경에 다 적응하며 사는 법이다. 주말 부부로 산다고 결코 힘들어 하지 않는다. 

  "솔직히 좋지 않아요? 자유잖아요."

  언젠가 주말에 놀러온 주말 부부의 남편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짓는 남자를 보며 나도 눈을 찡긋해 보였다. 

제주도가 아니면 이런 억새의 풍경을 볼 수 있을까?

  제주도에서 살고는 싶고, 경제적인 이유 등 여러 현실적인 문제로 완전한 이주가 어렵다면 1~2년 주말부부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1~2년 후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시 육지로 올라간다고 해도 제주살이를 한 번 경험해 보았으니 후회는 없을 것이다. 또한 가족들에게 특별한 추억도 생겼으니 괜찮은 선택이 아닐까?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

라고 했던가? 

  만일 제주살이를 정말 꿈꾸고 있다면,

  현실적인 이유로 온 가족 이주가 어렵다면

  제주도 주말 부부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단,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동안이라면 말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 될 지라도 

  그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의외로 우리의 인생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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