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CE를 삼켜버린 야속한 바다여~~
지난 화요일 우리 가족은 애월로 이사를 온 후 2년만에 바다로 물놀이를 갔다. 제주도 바다가 익숙해진 아이들은 바다에 가면 덥다, 모래가 묻는다, 끈적인다 등등의 이유로 해수욕장에 가는 것을 싫어했다. 제주이주 첫해에는 바다에 한 번 데려가면 나오지를 않던 아이들이 제주도 바다를 이토록 멸시하다니 참 복에 겨웠다.
"아빠도 이제 양보 못해. 차에 빨리 타."
나는 아이들을 납치하듯이 차에 태우고는 집에서 가까운 곽지바다로 갔다. 인상을 박박 쓰며 마지못해 바다에 들어간 아이들, 몇 번 파도의 맛을 보더니 대번 표정이 바뀌며 말했다.
"아빠, 재미있는데?"
오후 5시가 넘어 바다에 갔던 이유로 1시간 정도 밖에 놀지 못하고 집에 가야했던 아이들이 아쉬워 했다. 그때 생각난 곳이 '색달해변'이었다.
"얘들아, 아빠가 제주도에서 가장 재미있는 바다 데려가 줄까?"
아이들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대답했다.
"응!"
그렇게 우리 가족은 다음날 색달해변으로 향했다.
색달해변은 제주도에서 파도가 가장 세기로 유명한 곳이다. 고수의 실력을 가진 서퍼들이 가장 좋아하는 서핑족들의 성지이자 와이키키 해변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멋진 경관, 제주도의 바다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아이들은 구명조끼를 단단히 갖추어 입고도 처음 보는 파도의 크기에 선뜻 바다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빠, 여기는 차원이 다른데?"
"한번 들어가봐. 재밌을 것 같지 않아?"
망설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속으로 들어갔다.
"꺄악~~!!"
딸아이의 비명 소리와 함께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파도놀이가 시작되었다. 바다로 들어가면 파도 한 번에 해변으로 아이들을 데려다 놓는 색달의 파도! 아이들은 그 익사이팅한 놀이에 정신을 빼앗겨 바다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되었는데 문제는 내가 색달바다를 너무 우습게 보았다는 것에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든든하고 건장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는 이런 파도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야!"
라는 말과 동시에
"으악~!"
비명을 지르며 초라하게 엎어져 짜디짠 바닷물을 먹고야 말았다. 창피한 것도 창피한 것이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머리에 쓰고 있던 한화이글스(부끄럽지 않다. 절대로!! "나는 행복합니다~~") 모자와 딱 두 번 쓴 신상 POLICE 선글라스가 파도 한번에 날아가 온데간데 없었다.
'어디 갔어? 내 경찰~~!! 내 이글스~!'
아무리 둘러봐도 바다와 사람 뿐,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내 뒤에서 한 여자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이 모자~!"
뭐라니....? 한화이글스 몰라~?
모자는 찾았는데 아무리 발로 바닥을 뒤져보아도 신상 POLICE는 보이지 않았다.
"여보 나 선글라스 잃어 버렸어. 딱 두 번 쓴 건데...."
"으이구~!! 포기해. 여기서 그걸 어떻게 찾아!"
눈물이 앞을 가렸다. 지난주에 큰 마음 먹고 산 명품 선글라스를 단 두 번만에 잃어버리다니....!
'잊어 버리자, 잊어 버리자.'
아무리 다짐을 해도 속이 아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색달바다에 나의 POLICE를 보내야 했다.
집으로 오는 차안은 아이들의 들뜬 목소리로 가득 찼다.
"아빠, 너~~무~~! 재밌어. 또 가자."
예전에는 바닷물이 피부에 닿으면 따갑다고 짜증만 내던 아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했다.
"여보, 색달파도 장난 아니더라. 나도 지금까지 제주도 바다에서 논 것 중에 가장 재미있었어."
아내는 내 속도 모르고 아이들과 같이 흥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지금까지 제주도 바다에서 논 것 중에 가장 속이 쓰렸거든?'
그날 밤 딸아이가 잠자리에 누워서는 말했다.
"아빠 있잖아, 나 자려고 눈을 감으면 눈앞에 자꾸 파도가 보여. 바다 위에 누워있는 것 같아."
그렇게 아이들과 아내는 제주도 색달바다를 느끼며 시원하게 잠이 들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제주도에 사는 맛을 제대로 알려준 고마운 색달해변,
그런데......
내 POLICE는 돌려주면 안 될까?
돌아와줘, POL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