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출근이다. 학교일과 여러 개인 사정 때문에 제대로 휴가 한 번 떠나지 못했던 나는 개학 이틀 전부터 조바심이 났다. 단 이틀만이라도 가족과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고 싶었다.
"여보, 가고 싶은 곳 가. 어디 가고 싶은데?"
아내의 말에 나는 잠시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우리 성산 가자."
여행 이틀 날씨가 그냥 이랬다.
제주도 동쪽에 위치한 성산읍은 제주도에서도 가볼 곳이 가장 많은 관광 명소이다. 성산일출봉, 섭지코지, 신양해변이 있고 해맞이 해안도로(성산~김녕)의 시작점이다. 해맞이 해안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우도가 오른쪽에 펼쳐지고 종달리-하도-세화-월정리-김녕 등 제주도에서 가장 예쁜 바다가 차례대로 우리를 기다린다. 제주도로 이주한 첫해 성산에서 2년을 살았던 까닭에 제주도 동쪽은 우리 가족에게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개학을 앞두고 간 제주도 동쪽 여행, 날씨가 기가 막힌다. 성산에 살며 제주도 시골의 쓴맛 매운맛을 다 보았던 아내도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다.
"오늘 날씨 왜 이래? 하늘 봐, 바다 색깔 미쳤어. 역시 성산이 짱이야~~ 너무 예뻐."
나 역시 눈앞의 멋진 풍경에 황홀함을 느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게 대꾸한다.
"여기 제주도야. 뭐 언제는 안 그랬나?"
김녕바다는 파도가 낮고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진 곳이다. 그래서인지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많이 온다. 튜브를 탄 아이들이 물에 동동 떠서 즐거운 물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파라솔 아래 이국적인 바다의 풍경을 보며 맥주를 마신다. 물놀이에 빠진 아이들 덕에 캠핑 의자에 앉아 나도 맥주를 마셔 본다. 강렬한 태양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감성에 빠져들게 한다.
'이러려고 제주도에 살지.'
취기가 오르자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로 들어간다.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를 하며 바다를 이불 삼아 누워 파란 하늘을 본다. 행복하다~~ 행복하다~~ 노래가 절로 나온다. 아이들 얼굴에도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제주도 바다와 하늘, 그리고... 맥주
돌아오는 길에 한치회를 사들고 호텔로 들어온다. 횟집에서 함께 싸준 초밥과 김, 상추에 한치를 싸서 먹으니 그 맛이 설명할 수 없다.
"한치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
평소에 회를 좋아하지 않는 아들도 너무 맛있다며 계속 입속에 넣는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에게 한 시간의 부부시간을 허락 받고 호텔 밖 분위기 있는 펍에서 단둘이 생맥주를 마신다. 무뚝뚝한 아내도 분위기 있는 펍에서 맥주 한잔을 하니 안 어울리게 다정해진다.
"이번 휴가 너무 좋은 것 같아. 여보 코스를 너무 잘 짠 것 아니야?"
그렇게 성산에서의 밤이 기분 좋게 취해간다.
성산에 위치한 VIBE230
게으름을 피우며 아침에 늦게 일어나 성산읍에 있는 '성산짬뽕'으로 향한다. 이곳은 개업할 때부터 우리 식구들이 갔던 곳인데 지금은 대기줄을 서야 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사장님도 우리 식구를 알아보며 반가워하신다. 이곳은 짬뽕이 대표 음식이지만, 탕수육이 정말 맛있는 곳이다. 튀김옷을 적당히 입힌 두툼한 고기를 달콤한 소스에 찍어먹는 이 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안다. 역시 맛집은 크게 광고하지 않아도 입소문이 나는 것 같다.
"사장님, 저희 이번 책에 맛집으로 소개했는데 안 해도 될 뻔 했어요. 지금도 너무 바쁘신 것 아니에요?"
오랜만에 방문한 곳이지만 맛은 여전하다. 변하지 않는 맛! 한동안 이곳의 맛을 그리워할 것 같다.
'성산짬뽕'의 짬뽕과 탕수육
'성산짬뽕'을 나와 해안도로를 달린다.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우도가 보이는 도로 길가에 '목화휴게소'가 있다. 이곳은 이미 명소로 많이 알려져 있다. 허름한 컨테이너 건물에 준치와 맥주를 파는 곳. 이곳은 레트로한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바닷가를 따라 쭉 메달린 준치의 풍경이 참 제주스럽다. 영화 '건축학 개론'을 보면 엄태웅과 한가인이 차를 타고 준치가 쭉 메달린 해안도로를 달리는데 그 배경이 이곳이다. 말린 준치를 뜨거운 돌에 구워주는데 간단하게 맥주 한잔 하고 가기에 좋다. 준치는 오징어이기는 한데 맛이 한치에 가까운 제주도 오징어로 '중치'라고 불리다가 '준치'로 굳어졌다고 한다. 왼쪽에는 우도, 오른쪽에는 성산일출봉! 세상 어디에도 없는 풍경을 바라보며 먹는 맥주와 준치의 조합! 말해 뭐할까. 운전은 아내에게 맡겨두고 뜨거운 햇볕 아래 취해간다. 그대로 해안도로를 따라 달려 집으로 돌아온다.
목화휴게소 편의점
항상 말하지만 제주도는 집에서 나와야 제주도다. 집에만 있으면 이곳은 서울의 아파트와 다를 바가 없다. 출근을 앞둔 올해 여름 마지막 휴가, 아쉬운 마음은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올 수 있는 제주도에 살고 있으니 섭섭할 것도 없다. 시간을 내서 제주도 곳곳을 여행하다 보면 각기 다른 매력의 제주도에 항상 감탄한다. 그러면서 다시 느낀다.
'아, 맞아. 지금 나는 제주도에 살고 있구나.'
아무리 시간이 없고, 여유가 없어도 자주 나와야겠다. 제주도도 느끼고 감탄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멋진 곳이 아닐까? 난 항상 제주도를 느끼며 살고 싶다.
2022년 여름, 제주도 동쪽 여행에서 보았던 푸른 바다와 하늘, 멋진 풍경. 먹는 동안 즐거움을 주었던 맛있는 음식은 오랫동안 강렬하게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