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울 강남출신은 아니지만 서울에 살 때 한 가지 고수해온 주관이 있었다. 그것은 머리만은 청담동, 신사동 가로수길 등 강남의 유명한 미용실에서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나와 아내는 헤어디자이너 한 명만을 쫓아다녔는데 그러면서 알게된 것이 유명한 헤어디자이너들은 자주 미용실을 옮긴다는 것이었다. 남자머리 기준 4만원(지금은 더 올랐을 것 같다.)이면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최고의 디자이너에게 그 정도 돈은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주도에 내려온 첫 해,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를 해야했다. 처음 제주살이를 한 곳은 성산의 작은 마을이었는데 얼마나 시골인지 미용실 하나 없었다. 무턱대고 성산읍내로 나갔다. 성산읍내를 몇 번을 돌았는지 모른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내가 머리를 할 미용실이 보이지 않았다. 미용실이 몇 군데 있기는 했는데 간판만 봐도 안다. 이곳이 할머니들이 머리를 볶는 곳인지, 젊은이들이 머리를 하는 곳인지……. 며칠 전까지 강남에서 머리를 다듬던 나에게 시골 미용실이 어떻게 보였겠는가? 결국 읍내를 몇 바퀴 돈 후 그래도 그나마 가장 괜찮아 보이는 미용실에 들어갔다.
'앗! 잘못왔다.'
순간 직감했다. 아무리 보아도 머리를 할 것 같지 않은 퉁퉁한 남자 한 명이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았다.
"어서 오세요."
라는 인사 따위는 절대 하지 않았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무뚝뚝한 표정에
'다시 나갈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대안이 없었다. 그나마 여기 미용실 간판이 가장 깨끗했다.
"머리 깎으려구요." 남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자리를 가리켰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남자는 내 머리를 무심하게 손으로 들추어 보더니 가위를 잡았다.
"잠시만요!"
나는 처절하게 외쳤다. 너무도 불안했다. 남자가 첫가위질을 하기 전에 꼭 해야할 말이 있었다.
"제가 옆머리가 잘뜨는 스타일이거든요. 그것만 신경써주세요."
남자는 별 것 아니라는듯 씩 웃더니 내게 대꾸했다.
"이 머리는 원래 떠요."
"네? 무슨..."
남자는 제법 전문가처럼 거만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옆짱구잖아요. 옆짱구는 머리가 떠요."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망했다.'
나는 체념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그런데 머리가 안 뜨는 방법이 하나 있긴 해요."
"네?"
내가 눈을 뜨자 거울 속 그 남자는 한 마디 결정타를 더 남겼다.
"수시로 화장실에 가서 물을 발라주세요."
내 머리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다시는 그 미용실에 가지 않았다. 손님에게 어울리는 머리를 해야하는 미용사가 손님의 짱구머리 탓을 하는 불편한 진실!
지금은 5km 이내에 고급 미용실이 있는 시내권에 살고 있다. 지금 미용실에서는 절대 내 머리모양 탓을 하지 않는다.
"더블컷을 할까요? 댄디컷을 할까요?" 서울 강남에서 익숙하게 듣던 이야기를 해서 마음이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