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고립되다.
운동을 가려고 차를 몰았다가 5분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집에서 큰길로 나가려면 완만한 경사로를 내려가야 하는데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차가 그 급하지도 않은 경사로를 올라오지 못해 다급하게 뒤로 가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후진기어를 놓고 후진으로 집까지 돌아왔다. 그리고 느꼈다.
아, 고립되었구나.
제주에 5년 살며 고립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제주도는 눈이 자주 오는 곳은 아니지만 한 번 오면 많이 온다. 도심에 사는 사람들은 제설작업이 잘 되어서 통행이 원활할지 몰라도 나처럼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사람은 눈이 많이 오면 2~3일 집에 고립되고는 한다. 오늘 제주와 육지를 오가는 비행기 전편이 결항되었다. TV를 보니 4만 명의 사람들이 공항에 발이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한다. 이쯤되면 공항주변의 호텔과 렌트카 예약이 얼마나 어려울지 상상이 된다. 제주공항 결항에 대한 인터넷 뉴스 댓글에 달린 관광객들을 향한 부정적이고 인신공격적인 댓글을 보며 제주도민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 어느 누가 비행기 전편이 결항될 것이라고 생각했겠는가? 만약 이 정도일 것이라고 예측했다면 항공사에서 항공권을 팔고 사람들이 살 수 있었을까?
제주도보다 눈이 많이 오는 곳은 대한민국에 많지만 제주도에 폭설이 내리고 강풍이 부는 것은 육지와는 다른 문제이다. 육지는 모든 길이 연결되어 어떻게든 다닐 수 있지만 제주도는 하늘길, 바닷길이 모두 끊겨 고립되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방법이 없다.
제주도에 고립된 첫째 날, 집안에만 있는 것이 답답한 마음에 딸 아이와 마당에 나와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었다. 지금도 세차게 내리는 눈에 세상이 멈추어 버린 느낌이다. 마당에 진돗개 제주를 풀어놓으니 기분이 좋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신이 났다. 어릴 적 눈이 많이 왔던 날의 풍경이 이런 모습 아니었을까? 오랜만에 감상에 젖어 보았다.
섬에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육지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쉬운 일들이 이곳에서는 그렇게도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섬에 산다는 것은 이런 어려움을 감내할 용기가 필요하다. 제주에 내려온 첫해 폭설로 고립되었을 때는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우울했었는데 지금은 '그러려니~'하는 것을 보니 나도 제주사람 다 되었다.
얼른 눈이 녹고 바람이 멈추어 제주도를 찾아온 사람들이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들의 기억 속에 제주가 힘들었던 곳이 아닌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곳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제주도가 행복했던 곳으로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