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고 제주도민이 혼자 섬에서 주말을 보낸다는 것
처음에는 좋을 것만 같았다.
제주도에 사는데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아내가 서울에 다녀오겠다니, 더욱이 이번 주말은 날씨마저 좋다고 했다.
"나도 같이 가도 되는데."
"아니야, 오랜만에 여보도 혼자 쉬면서 글이나 마음껏 써. 만나고 싶은 사람 있으면 만나던지."
아내의 속 깊은 말에 잠시 웃음이 새어 나오려 했지만 애써 참아냈다.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디 가지? 오랜만에 오름이나 다녀와? 아니면 쏠캠?'
마침내 찾아온 토요일 아침, 날씨가 정말 환상이다. 제주도는 주말에 날씨가 좋기 힘든 곳인데 이런 날은 운이 좋은 날이다. 비행기 탑승 시각보다 일찍 집에서 나와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왔다. 용담해안도로 바다 바로 위에 지어진 카페는 창밑으로 바닷물이 넘실거렸다. 토요일 아침 햇살 따뜻한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니 저절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아직 식구들이 출발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좋으면 혼자 얼마나 좋을까?'
제주도로 이주하고 한 번도 혼자 있어본 적이 없었기에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을 공항에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제주도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며 집으로 왔다. 헬스장에 가서 3시간을 아무런 눈치보지 않고 실컷 운동을 했다.
거기까지였다. 내가 혼자여서 좋았던 것은.
'혼자 있는 저녁이라니.... 누굴 만나지?'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주말 저녁에 편하게 불러내서 맥주 한잔 마실 친구가 제주도에 없다는 것을. 제주도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무연고 제주도민에게 편한 친구가 아직 없다는 것을.
한참을 고민해 전화한 전 직장동료에게서
"죄송해요. 오늘 아내가 생일이라서."
라는 말을 듣고 나는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고쳐 먹었다. 40년을 다른 곳에서 살다가 제주도에서 살기로 한 것은 스스로 외로움을 선택한 길이 아니었던가. 옷을 입고 마트에 가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저녁거리와 맥주 한 묶음을 사들고 들어왔다. 나만을 위한 저녁을 차리고 맥주를 마시며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무한정 틀어놓았다. 그리고 언제인지 모르게 잠이 들었다.
벌써 찾아온 일요일 오후
혼자 오름도 바닷가도 가지 못했다.
쏠캠도 호캉스도 즐기지 못했다.
결국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무연고 제주도 이주민으로 살아보니 혼자만의 시간이 있다고 해서 별로 특별할 것이 없다. 가끔은 귀찮고 성가실 지도 모르지만 이곳 섬에서는 뭐니뭐니해도 가족이 최고다. 오름에 올라도 바다에 가도 가족과 함께 해야 즐겁고 제주도 어느 곳을 여행하든 가족이 있어야 즐겁다. 어렸을 적부터의 친구, 오랜 시간 마음을 나누었던 지인들은 모두 바다 건너 육지에 있기에 단절된 섬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가족 뿐이다. 여담이지만 부부관계가 좋지 않거나 가족간의 관계 개선을 원하는 분이 있다면 제주한달살이를 추천한다. 분명 관계가 좋아질 것이다.
다시 쉽게 찾아오지 않을 제주도에서의 혼자만의 시간!
너무도 짧게 지나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은 있지만
무연고 제주도민이 이 작은 섬에서 뭐 특별히 할 것이 있을까?
아내에게 공항으로 데리러 오라는 톡이 왔다.
오늘 저녁 아내랑 맥주나 한잔 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