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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포 아저씨와 신반장

by JJ teacher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일이다. 모처럼 조용히 집에서 쉬고 있는데 벨이 울렸다. 옆집 강남부부의 남편이었다.

"형님, 잠시만 저 좀 도와주세요."

남자는 내 손을 끌다시피 자기 집 현관문 앞으로 데리고 갔다.

"문 좀 봐 주세요. 문이 잘 안 닫혀요."

'자기 집 현관문이 안 닫히는데 왜 남을 부르지?'

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 남자는 형광등 하나가 들어오지 않아도

"야~야, 사람 불러!"

라고 말하는 인물이다. 내가 하도 공구통을 들고 타운하우스 아이들 자전거를 조이고, 기름 쳐주고, 바람 넣어주고 고쳐주었더니 이제 내 특기를 이용해 먹으려는 셈이다. 우스운 것은 나도

'심심한데 할 일 생겼네?'

하며 공구통을 들고 왔다는 것이다.

먼저 무엇이 문제인지 한참을 문을 열고 닫으며 분석했다. 바닥에 얼굴을 대다시피 엎드려 문밑을 보니 이거, 이거~ 쉬운 일이 아니다. 도대체 멀쩡한 문에 무슨 짓을 했는지 문밑 철판이 굽어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튀어나온 철판 때문에 문틀에 문이 닿아 뻑뻑한 것이다. 문제는 알겠는데 작업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일단 손이 들어갈 틈이 없다. 드라이버를 대고 망치로 쳐보기도 하고, 펜치로 눌러도 보았지만 힘을 받지 못한다. 바닥에서 뒹굴다시피하니 옷이 엉망이 되고, 손은 기름때로 까매졌다.

문제의 문

"안 되겠는데? 사람 불러!"

내 집도 아니고, 이러며 돌아서면 되는데 가끔은 내 성격이 참 원망스럽다. 쓸데 없는 도전정신이 느껴졌다.

'내가 이거 고치고야만다."

남의 집 현관바닥에서 뒹군지도 2시간이 되어갔다. 순간 생각난 것이 빠루였다.

빠루는 이렇게 생겼다.

'자, 내가 알고 있는 과학지식을 동원하자. 나 누구? 나 선생! 아이들에게만 지렛대의 원리 이런 이야기하지 말고, 내가 과학원리를 실생활에 써먹어야지."

난 한참을 고민한 끝에 ㄱ자로 된 빠루 머리를 문밑으로 집어넣었다. 톡 뒤어나온 철판부분에 빠루 머리가 닿았다. 있는 힘을 다해 지렛대의 원리로 문을 들어올렸다. 튀어나온 철판이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손으로 만져보니 아까보다 많이 들어가 있었다.

'한 번 더! 침착해~ 침착해!'

있는 힘을 다해 빠루 손잡이를 지렛대의 원리로 들어올렸다. 이쯤이면 되었다고 생각하고 문을 닫아보았다.

사르르~~

나는 분명 그 순간 '지렛대의 원리'를 발견한 아르키메데스의 웃음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세상 어느 문이 이토록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닫힐 수 있을까? 김연아 선수가 얼음빙판 위에서 우아하게 춤을 추듯 문이 사르르 닫혔다.

"와! 대박! 형부, 너무 멋져요."

제수씨라 부르는 강남부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때, 절대! 쳐다보면 안 된다. 그러면 멋이 떨어진다.

"뭐 별 것도 아닌데요. 야, 나중에 술 한 잔 사라!"

나는 남자에게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말하고, 정말 쿨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설마 고칠 수 있겠어?'

하며 바라보던 아내와 강남부부의 존경어린 눈빛을 뜨겁게 느꼈지만 꾹 참고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는 2층 방으로 올라와 문을 꼭 닫은채 주먹으로 입을 막고 웃었다.

'참, 멋지다! 나란 놈~'

옆집 현관문은 이제는 이렇게 잘 닫혀 있다.

제주도에 살면 할 줄 알아야 하는 일이 많다. 이곳이 섬이다보니 무엇 하나 고치려 해도 오래 걸린다. 필요한 부품을 구하기 어렵고, 육지에서 배송이 와야한다. 기술을 가진 전문가는 제주시에 몰려있어 약속을 잡기 어렵다. 아무튼 신속하지 않다. 서울에 살 때도 뭐 만들기를 좋아하고, 고치는 것을 즐겨한 것은 사실이지만 제주도에 와서 정말 별 일 다 해보았다.

캠핑장비를 둘 곳이 없어 창고를 내 손으로 지었다. 집앞의 주차라인도 내가 그렸다. 차안의 블랙박스도 내가 달았다. 차박을 위해 산 7인승 카니발 자동차 시트레일 연장도 내가 했다.(이건 진짜 어렵다. 차 바닥을 칼로 다 잘라내고 레일을 새로 깔아야 한다.) 딸아이의 책상도 나무만 주문해서 내가 만들었다.

제주도에 살며 별일 다 해본다.

이제 아내는 집안에 무엇인가 고칠 일이 있거나 문제가 생기면 사람을 부르지 않는다. 남편만 부른다.

"여보~~~" (목소리가 부드러우면 분명 뭔가 시키려는 거다.)

이렇게 되니 창고 안에는 없는 공구가 없다. 문제는 아내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타운하우스 아이들은 자전거가 고장나면 자기 아빠가 바로 옆에 서있는데 내게 말한다. 문제는 이 아빠들이 자기 일 아니라는듯이 나만 쳐다본다는 것이다. 언젠가 제주도에 놀러오신 어머니께서 내가 아이들 자전거, 킥보드를 고쳐주고 있는 모습을 보시더니 깔깔대며 말씀하셨다.

"자전거포 아저씨!"

다른 이웃은 나에게

"신반장님!(영화 홍반장 속 캐릭터)"

이라고 부른다. 어머니가 나를 자전거포 아저씨라 불러도, 이웃들이 신반장, 동대표라 불러도 솔직히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더 잘 고쳐주고 싶은 것을 보니 나도 참 못 말린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재주가 있어 참 다행이다.

오늘 퇴근을 하니 어제 문을 고쳐준 강남집의 딸아이가 작은 반찬통을 들고 서있었다.

"삼촌, 문 고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며 준 돼지두루치기를 저녁에 맛있게 먹었다. 이 맛에 조금 귀찮고 힘들어도 돕고 사는거다.

우리는 부자를 말할 때

움켜쥐고만 있고 쓰지 않는 사람을 부자라 말하지 않는다.

진정한 부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고 품위있게 사는 사람이 부자이다.


돈은 별로 없지만

제주도에 와서 나는 참 부자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먼저 찾아주고

"삼촌, 최고!"

"형님, 고마워요."

"형부, 멋져요~"

라며 좋아해주니 이보다 풍족할 수 없다.

당분간은 자전거포 아저씨와 신반장으로 지내야할 것 같다.

내가 만든 창고와 딸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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