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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브(IVE)와 신승훈, 그 상관관계에 관하여...

딸아이가 변했다.

by JJ teacher

지난 주말, 3박 4일의 일정으로 짧게 일본 오사카에 다녀왔다.

이번 겨울방학에 워낙 많은 일들이 있어 일본에 가는 것이 부담이 되었지만 항공권이며 숙소까지 미리 예약해둔 아내와 아이들의 기대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 가족은 각자 일본에서 하고 싶은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실현하기로 했다. 아내는 가격에 상관없이 맛있는 스시를 먹는 것이었고, 아들은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가는 것, 나는 좋아하는 삿포로 생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정했다. 여기까지는 오사카 여행에서 흔히 나올 수 있을 법한 버킷리스트이지만 딸아이의 버킷리스트가 좀 당황스러웠다.

"아빠, 나는 아이브 일본판 앨범을 사는 거야."

"아이브? 걔네 우리나라 가수 아니야? 일본에서도 앨범을 냈어? 그거 어디서 사는데?"

"내가 다 알아놨지."

돈을 몇 백씩 들여 해외여행을 가는데 고작 그 나라에서 하고 싶은 일이 우리나라 아이돌 앨범을 사는 것이라니...... 결국 우리 가족은 아이브 앨범 하나를 사기 위해 오사카 우메다에 위치한 타워레코드를 찾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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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에 있는 '타워레코드'

우리 가족이 제주도로 이주해 살게된 이유 중의 하나가 아이들에게 각종 미디어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하는 어린시절을 선물해 주기 위해서였는데, 그래서 그렇게 오름이며 바다, 박물관을 다니고 캠핑을 즐겼는데, 그래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믿었는데.......

딸아이가 변했다.

요즘 딸아이는 아이브며 뉴진스, 여자아이들까지 덕질에 한창이다. 특히 아이브의 경우는 그 증세가 심각한데 하루종일 아이브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시도때도 없이 춤을 춘다. 아이브의 모든 앨범을 종류별로 사모으고(요즘은 똑같은 CD를 멤버별로 다르게 판다.) 세상에 나온 모든 아이브 포카(포토카드)는 몽땅 수집할 기세이다. 아이브를 모르던 2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이 좋아, 제주도가 좋아?"

라고 물으면 1초의 망설임 없이

"제주도"

라고 대답하던 아이가 이제는

"서울이 좋아."

라고 대답한다. 이유를 물어보면 대답이 참 명쾌하다.

"교보문고가 있잖아. 아이브 콘서트도 서울에서 하고."

마치 세상의 중심이 아이브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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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수집한 아이브 굿즈와 일본판 앨범, 사진에 찍힌 것은 아주 일부이다.

이런 딸의 행동이 당황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도 한때 좋아하는 가수에 빠져 앨범을 사고 사진을 모으고, 콘서트를 쫓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 딸아이에게 그동안 수집한 아이브 굿즈를 구경시켜 달라고 했다. 신기해 하며 구경하고 있는데

"아빠는 좋아하는 가수 없었어?"

하고 딸아이가 물었다.

"아빠도 있었지. 한번 볼래?"

나는 옷장 깊숙하게 두었던 신승훈 카세트 테이프와 CD를 꺼냈다. 이사를 다니며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좋아하는 가수 음반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렇게 감상에 빠져있는데 눈치 없는 아들이 지나가며 하는 말!

"헉! 이게 다 뭐야? 촌스러워. 아빠 조선시대 사람이야?"

KakaoTalk_20230212_221626969.jpg 옷장 속에서 꺼낸 나의 신승훈

1990년대~2000년대 초반을 주름잡던 신승훈이 요즘 아이들에게는 조선시대 사람으로 인식되는 불편한 현실, 이런 것이 세대차이구나! 하긴 내가 어린 시절 부모님이 좋아하시던 현철, 주현미, 나훈아의 노래를 촌스럽다고 느끼고 지금 들으면 하나도 빠르지 않은 서태지의 음악을 부모님들이

"이게 무슨 노래야?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

라고 말했던 것과 같으리라.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도 아이브, 뉴진스, 여자 아이들 노래를 좋아하고 즐겨 듣고 있다는 점이다. 초등학생을 키우고 있는 부모로서, 초등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로서 아이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아이들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기에 그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나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비싼 아이돌 굿즈의 가격은 이해할 수가 없다.

오늘도 아이브 응원봉을 사달라는 딸아이와 한참 동안 입씨름을 했다. 불빛 들어오는 투명 플라스틱 봉 하나에 50,000원이라니! 이것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아이브와 신승훈의 상관관계! 그 가깝고도 먼 간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고민이다.

아무래도 이 글을 마치고 오만 원짜리 아이브 응원봉을 결제해야겠다.

응원봉.jpg 아이브 소속사분들, 이런 것 좀 그만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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