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은 장비빨이지!
"오빠는 뭘 그렇게 사는 것을 좋아해? 큰 것은 아닌데 자질구레한 것들은 참 잘 사더라?
아내의 말에 나는 괜히 큰소리로 말했다.
"어렸을 때 못 살아서 그래!"
내 말이 아내에게는 기가 막히게 들렸겠지만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다. 평범한 공무원의 자녀로 태어난 나는 어렸을 때 장난감을 가져본 기억이 거의 없다. 친구들 집에 가면 자동차니, 블럭이니 장난감이 수두룩한데 검소하신 부모님 덕에 나는 가게에 진열된 장난감만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그래서 첫째가 아들로 태어났을 때 나는 그 한을 풀기라도 하려는 듯, 아이가 원하는 모든 장난감을 다 사주었다. 그리고 신나게 같이 놀았다. 그 결과 우리집에는 지금까지도 다 못 치운 장난감이 가득하다. 내가 안 치웠다는 표현이 맞을 지도 모른다. 아내가 자루에 가득 담아 버리려 할 때 멀쩡한 로봇 몇 개는 내가 몰래 빼두었으니까.
이러한 결핍은 성인이 된 후에도 이어져 가지고 싶은 물건은 언젠가 꼭 손에 넣어야 속이 시원하다. 다행히 내가 가지고 싶어하는 물건은 자동차나 집, 명품 시계와 같은 고가의 물건이 아니다. 참고로 내가 최근에 가지고 싶어했던 것은 '손석희 시계'라 불리는 이만 원대의 카시오 제품이었다.
이런 나도 고가의 제품에 욕심을 낼 때가 있는데 바로 '운동용품'이다. 몇 년 전 배드민턴에 빠졌을 때는 요*스에서 나오는 최고가의 라켓(한 자루에 30만원이 넘는다.)을 5자루씩 등에 꽂고 다녔고, 배드민턴복, 배드민턴화까지 신상으로 풀세팅해서 동호회에 갔다. 복장과 장비를 완벽하게 갖추고 갔던 날, 나는 '이용대'가 되어 코트를 날아다녔다. 정말이다!! 그렇게 딱 3년 배드민턴에 빠져있다가 발목이 아프다는 이유로 배드민턴은 그만 두었다. 그때 사두었던 고가의 장비들은 신발장 구석에서 먼지가 쌓여 있다.
요즘은 헬스에 빠져있다. 헬스를 처음 시작할 때 내가 가졌던 생각!
'헬스만큼 돈 안 드는 운동이 어디 있어? 헬스장에서 주는 옷 대충 입고 런닝머신 뛰다 오면 되는 것 아니야? 손 아프면 장갑이나 하나 사면 되겠네.'였다.
헬스를 시작한 지 언~~ 1년 반!
헬스만큼 돈이 많이 드는 운동도 없다. 회원권에, 개인 p.t에, 닭가슴살과 단백질 보충제 등 식단에 드는 비용까지 어마어마하다. 헬스장 수건 옆에 쌓여 있는 옷을 입으면 왠지 내가 더 외소해 보이는 것 같고 베*사 그립을 끼지 않으면 운동을 하다가 다칠 것만 같다. 허리에 리프팅 벨트 정도는 해주어야 간지가 흐르는 것 같다. 내가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헤드셋을 머리에 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런닝머신을 뛰는 사람들이었다. 보기만 해도 내가 더웠다. 헬스장에 최신음악이 그렇게 크게 나오는데 이어팟을 따로 끼는 사람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전 무선 헤드셋과 이어팟을 세트로 구입했다. 지금은 기분에 따라 바꾸어 착용한다.
헤드셋 세트를 구입한 후로는 스마트폰에 듣고 싶은 음악을 담아 헬스장을 간다. 운동을 하러 가는 기분이 한결 더 설레고 즐거우며 집중도 잘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든 생각,
지름신에게는 다 계획이 있구나!
생각해 보면 남자는 참 단순하면서 재미있는 존재이다.
골프를 하든, 야구를 하든, 낚시를 하든, 테니스를 하든, 수영을 하든
좋은 장비부터 갖추고 전문 유니폼을 입으려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상관없다.
그냥 나만 멋있고 좋으면 된다.
10년, 20년 운동을 한 근육질의 헬스인들은 내가 우습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자잘한 소비로 커다란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면
이것도 현명한 소비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어떤 일을 하든 나 자신이 설레고 만족하면 되지 않을까?
행복이란 것,
생각하기에 따라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박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