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모임 불참러로 살기로 했다. 쭉~~
세상일이 모두 그렇겠지만......
사회 생활을 하며 중심을 잡고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의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도로 오고자 했을 때
내가 마음 먹은 것은 주변에 흔들리지 않는 삶이었다.
누가 뭐라하든 내 주관대로 살고
직장보다는 가정에 충실하며
직장동료와 다른 사람에 대한 뒷담화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실 시간에
가족과 행복한 짠~!타임을 갖는 것!
그것이 내가 이곳에서 누리고자 하는 삶의 지향점이었다.
제주살이 6년차, 지금까지 어느 정도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나의 주관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금요일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남교사들만 모여 저녁식사를 했다. 흔히 '남친회'라고 부르는데 사실 내가 이런 모임을 마지막으로 해본 것이 어느덧 10년 전의 일이다. 서울에서 부장교사에 친목회 회장, 남친회 회장까지 꽤 활동적으로 지냈던 적이 있었는데 이러한 모임이 별 의미 없고 아까운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자발적인 '프로 모임 불참러'가 되었다. 처음에 친목 모임에 불참을 할 때는 눈치도 보고 마음이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차츰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이러한 모임에 불참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나에게 별 손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로 금요일에 친목 모임이 이루어져서인지 사람들은 주말이 되면 모두 그 끈끈했던 술자리의 시간을 깨끗이 잊어버린 듯했다. 공적 반, 사적 반인 술자리가 사라지니 불필요한 속마음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고 오해나 감정싸움을 할 일이 없었다. 오히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가 더욱 원만하고 깔끔해졌다. 내가 그들을 직장 동료 이상이나 이하로 대하지 않듯이 그들도 나를 그렇게 대했기에 오해의 소지가 없었다. 직장의 평판은 좋아지고 직장동료들에게 '젠틀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이것이 현명한 직장생활이라는 것을.
지난 금요일 '남친회'모임 공지를 받고 고민했다. 서울에서 했듯이 과감하게
"죄송합니다. 제가 선약이 있어서요."
라며 거절을 할까, 아니면 참석을 할까. 코로나 이후로 3년만에 하는 첫회식에, 2023년 첫모임이고 남교사 중 한 명도 빠지는 사람이 없다는 말에 모임에 참석을 했지만.....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알게 되었다. 좋아하지도, 아니 단 0.1%도 관심없는 당구대 앞에 서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얼음물을 옴팡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역시~~이건 아니구나!
나는 제주도의 허름한 당구장 안에서 내 정체성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도리!
사람은 살아가며 여러 벌의 '도리의 옷'을 입고 살기도 한다. 별로 가깝지도 친하지도 않은 사람의 결혼식장에 '도리의 옷'을 입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생전 처음 보는 아기의 첫생일 잔치에 '도리의 옷'을 입고 박수를 치고 있기도 한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도리의 옷'을 입고 촛점이 풀린 눈으로 영혼 없이 회식자리에 앉아 있기도 하고, 왜 마시는지도 모르는 술을 마시고 취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침해가 떠오르면 찾아오는 세 글자!
허·무·함
누군가 내 이런 생각에
"그렇게 하면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해. 하기 싫어도 해야 인정도 받고, 승진도 하지!"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어제 당구장을 나와 3차를 갈 때 정중히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더 글로리-시즌 2>를 보며 마셨던 맥주 한잔이 정말 맛있었다는 것,
<더 글로리-시즌 2> 8편을 새벽 4시까지 정주행했다는 것,
송혜교의 연기에 빠져들었다는 것,
그 시간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다시 프로 모임 불참러가 되어야 하나....?
아무래도 다음 친목회 모임 때는
당구장 입구에서 인사를 해야겠다.
"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