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코로나라니!
처음에는 설마했다.
지난 주 금요일 같은 교무실에서 근무하시던 선생님이 코로나 확진이 되고 곧바로 병원으로 뛰어가 실시한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기에 안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약을 먹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기침과 어딘지 모르게 무거운 컨디션, 그렇게 주말을 지냈다. 월요일 아침 모든 출근을 마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실시한 자가진단! 너무도 선명한 두 줄에 잠시 멍해졌다. 정신을 차리니 드는 생각들,
'체육시간만 기다리는 우리 아이들한테 미안해서 어쩌지?(나는 초등학교 체육전담교사다.) 이번주 교직원 연수가 있는데 어쩌지?(나는 우리 학교 연구부장이다.) 친목회 첫 회식도 있다는데......'
눈앞이 막막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학교측에 연락을 취해 출근정지 상태임을 알렸다.
사실 자만하기도 했다. 작년 같은 학년 8개반 선생님 중에서 나만 코로나에 확진이 되지 않아 슈퍼면역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참 보기 좋게 큰코가 다쳤다. 아침 일찍 병원에 들려 신속항원검사를 하고 약을 지어 집으로 돌아왔다. 코로나 확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약 먹고 자고, 밥 먹고 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 밖에 없었다. 학교 일 때문에 집에 있어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코로나 확진판정을 받으니 몸살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독한 약을 먹고 한나절을 쉬고나니 오후 늦게야 조금 기운이 났다.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이 정리되지 않은 지저분한 마당이었다. 내가 그동안 바쁘긴 바빴나 보구나. 예전 같았으면 당장 정리하고 치웠을 것을.... 마당에 있는 불필요한 물건과 쓰레기를 정리하고 치웠다. 한결 나아지기는 했지만 깔끔한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은 마구잡이로 자라있는 잔디 때문이었다. 창고에서 잔디깎기를 꺼내 잔디를 밀었다. 한 시간을 마당을 정리하니 코로나로 우중충한 마음이 확 깎여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벤치에 앉아 저녁해가 내린 마당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여유를 느꼈다.
제주도에 살고 있지만 요즘은 제주에 살고 있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한다. 특히 평일은 직장에 가고 저녁에 헬스장에 다녀오면 이미 잘 시간이 된다. 사실 요즘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 이러려고 제주도에 내려온 것은 아니었는데...... 잔디 마당 벤치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이번주에는 출근을 할 수도, 헬스장에 갈 수도, 사람을 만날 수도, 여행을 할 수도 없다. 깔끔해진 우리집 마당이 눈에 들어온다. 연하게 물드는 저녁 노을빛이 눈에 들어온다. 뜻하지 않게 찾아온 코로나로 제주도의 평화로운 일상이 눈에 보인다.
진정한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시간이 많은 사람이라는데
내가 서울의 삶을 버리고 제주도에 내려온 것도 시간적 부자가 되고 싶어서였는데
현실에 쫓겨 잠시 이런 첫마음을 잊고 살았다.
비록 내 앞에 놓인 현실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제주의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싶다.
요즘 우리집 마당에 잔디가 초록초록 올라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