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수확철이 돌아왔다.
제주도는 물가가 비싼 곳이다. 내가 서울에서 살다왔기 때문에 제주도의 높은 물가는 직접 피부로 와닿는데 기름값은 육지에 비하여 항상 1L당 200원씩 비싸고 채소며 과일을 비롯한 식료품, 생필품 대부분이 비싸다. 모든 물건이 배를 타고 건너와야 하는 운송비 때문이다. 처음 제주도로 이주했을 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날씨도, 교통도, 사람도 아닌 택배였다. 그놈의 '추가배송비'는 아무리 대범하게 넘기려 해도 쉽지 않았다. 만 원짜리 물건을 하나 사는데 기본배송비 4,000원에 추가배송비 5,000원 9,000원의 택배비가 붙으니 속이 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가구 같은 경우는 화물로 분류되어 10만원짜리 책상에 배송비는 12만원이 붙기도 한다. 이마저도 '제주도와 도서산간 지역은 배송이 불가합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좌절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제주도 사람들에게 로켓플레쉬나 새벽배송도 안 되고, 추가배송비가 매번 붙어서 짜증난다고 말하면 제주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제주도는 원래 그래요.
이렇게 제주도 사람들은 모두 '그러려니~'하며 산다. 제주이주 6년차, 나도 이제는 많이 적응해서 '그러려니~'하려 한다. 하지만 가끔은 속이 부글거릴 때도 있다.
모든 물가가 육지에 비해 비싸지만 제주도에서만 가격이 싼 것도 몇 가지 있다.
첫째, 삼다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먹는 물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삼다수, 제주도에서는 이 삼다수 가격이 아주 싸다. 마트에 가면 삼다수 2L가 900원에 팔리고 있고 500ml는 400원 정도에 판다. 내가 일하는 학교에서는 삼다수를 대량으로 사서 교무실에 비치해 놓고 있는데 이렇게 대량으로 살 경우는 진짜 싸다.
둘째, 무와 당근 가격이다. 제주도에서는 무와 당근 농사를 많이 짓는다. 무와 당근을 본격적으로 수확하는 늦가을에 제주도 논밭을 지나가다 보면 제주 할망들이 무와 당근을 수확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처럼 수확을 하면 다행인데 제주도에서는 무와 당근 농사가 풍작이면 밭을 갈아 엎어 버린다. 인건비를 주고 수확하느니 엎어버리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무와 당근을 마트에서 싸게 살 수 있지만 엎어버린 밭에서 무와 당근 몇 개만 주워와도 몇 달은 먹을 수 있다. 우리 가족도 제주 이주 첫해부터 무와 당근은 밭에서 주워와서 먹었다.
셋째, 수박이다. 제주도에서 수박이 많이 난다는 것을 모르는 육지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제주도 애월읍 신엄리라는 곳은 마을 전체가 수박산지인데 여름철이 되면 사람 머리보다 큰 노지 수박을 10,000원에 두 통씩 들고 갈 수 있다. 맛도 기가 막혀서 육지 수박 부럽지 않다. 여름에 제주도에 여행을 오면 꼭 수박을 한 통 사보시기를 권한다.
마지막으로..... 감귤이다. 제주도에서는 '귤을 사먹으면 제주도민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귤이 흔하다. 특히 가을~초겨울 수확하는 노지감귤은 관광객들은 좋아라 사가지만 제주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는 과일이다. 제주도 시골마을에 가면 귤이 탐스럽게 열려도 수확하지 않는 감귤밭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런 밭은 누군가 공짜로 따가면 고맙다고 말한다. 실제로 당근마켓을 보면 '감귤 따가세요. 좌표 찍어드려요.'라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관공서에 가면 민원 창구마다 감귤을 바구니에 놓고 마음대로 가지고 갈 수 있게 하고 상점에 가면 박스채 가져다 놓고 손님들이 집어 갈 수 있게도 한다.
우리 가족은 진정한 제주도민이 되기에는 멀었는지.... 아직 감귤을 사먹는다. 우리 동네에도 매년 수확하지 않는 주인없는 감귤밭이 있지만 그렇다고 몰래 따갈 배짱은 없어서 군침만 흘릴 뿐이다. 한글연휴 첫날인 토요일, '오늘은 어디에서 놀까?'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문자 한 통이 왔다.
'안녕하세요. 귤 수확합니다.'
작년에 당근마켓으로 알게된 감귤밭 주인이었는데 10,000원만 주면 한 콘테나 귤을 듬뿍 담아준다. 문자를 받자마자 전화를 했다.
"내일 당장 갈게요."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올해는 다른 해에 비하여 감귤 수확이 한 달 정도 빨라졌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10월인데 감귤밭의 귤들이 모두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11월이나 되어야 길거리에 감귤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분주히 오고갔는데 벌써부터 감귤 콘테나를 가득 실은 트럭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주인 아주머니와 반갑게 인사하고 감귤밭을 둘러보니 감귤의 싱그러움에 눈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육지에 선물 보낼 곳이 많은 우리 가족은 상품, 비상품(맛은 똑같다. 모양만 조금 다를 뿐) 한 콘테나씩 모두 삼만 원에 사가지고 돌아왔다. 쇼핑백 가득한 귤을 보며 마음이 풍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몇 개 까서 맛을 보니 갓 딴 귤이라서 그런지 상큼하고 탱탱한 맛이 살아 있었다.
그래, 이 맛이지!
제주에 사는 것이 물가나 택배비 때문에 짜증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런 소소한 기쁨도 있으니
이 맛에 제주도 산다.
지금도 감귤을 까먹으며 글을 쓴다.
아! 상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