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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teacher Oct 24. 2023

전원 생활, 낭만? 아니, 고단함!

Carpe diem!

  전원 생활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무엇인가?

  잔디가 깔린 마당과 정원이 있고, 햇살 좋은 날 마당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차를 마시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층간소음 걱정이 없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으며 주말이면 이웃과 바비큐 파티를 하는 모습, 자연과 함께 하는 여유로운 삶. 아마도 그것이 타운하우스나 단독 주택에서 전원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기대하는 풍경일 것이다. 단독 주택 생활 6년차 제주도민으로서 이러한 상상을 틀렸다고 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러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몸이 무척 피곤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싱크대 배관이 또 막혔다. 작년에도 이때쯤 배관이 막혀 큰돈을 들여 뚫었는데 다시 또 막혔다. 맨홀로 나가는 배수관의 기울기가 평평해서 잘 막힐 것이라는 업자의 말은 틀리지가 않았다. 다시 사람을 불러야 했다. 4시간의 작업 끝에 배관은 뚫렸지만 거금 50만원이 한번에 털렸다. 이런 일을 겪을 때면 매번 드는 생각,

  '그냥 아파트에 살까?'

  물론 아파트에 산다고 배관이 막히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아파트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관리사무소에 먼저 연락하지 않았을까? 스스로 해결해 보겠다고 맨홀 뚜껑을 열어보고 배수관에 스프링 레일을 넣어 보는 무모한 일은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시간만 버리고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진작에 사람을 부를 것을......

  여유로운 전원 생활을 누리려면 몸이 참 고단하다. 조금만 신경 쓰지 않아도 허리까지 자라나는 잡초는 금세 집을 폐가처럼 만들어 버린다. 여름철 잔디는 또 왜 그렇게 왕성하게 자라는지 깎아도 자고 일어나면 다시 자라있다. 한여름에 잔디를 깎아본 적이 있는가? 8월 땡볕에 잔디를 밀면 30분도 되지 않아 탈진해서 드러눕는다. 가을이면 낙엽을 긁어 모아야 하고 겨울이면 집앞에 쌓인 눈을 치워야 한다.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해주지 않는다. 난방가스가 떨어져 집이 냉골이 되면 얼른 연락해서 가스나 기름을 채워 넣어야 한다. 가스가 늦게 오면 추위에 덜덜 떨어야 한다. 연료가 채워지고 보일러를 돌려도 주택은 별로 따뜻하지 않다. 또 무슨 난방비는 이리 많이 드는지...... 때가 되면 정화조를 비워야 하며 찢어진 방충망을 수선해야 한다. 이밖에도 집에 관계된 일은 끊임이 없다. 그리고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제주도 전원 생활을 위하여 고군분투 중인 도시남자!

  서울에 사는 지인들이 가끔 우리집에 놀러와 속사정도 모르고

  "완전 부럽다. 불멍? 바비큐? 아파트에서는 꿈도 못 꾸지. 야, 뭐하러 놀러가냐? 너네 집이 펜션인데."

라고 말할 때면 으쓱할 때도 있지만 아주 잠시일 뿐이다. 그들이 돌아가면 화롯대의 재를 치우고 바비큐 웨버를 청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도 마당에서 텃밭이나 꽃밭은 가꾸지 않지만 여기에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집안일은 끝이 없다. 설상가상 서울 태생인 아내는 마당에 관심이 없다. 잔디가 자라도, 잡초가 무성해도 단지 내가 할 일일 뿐이다. 그래도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아이들은 지금 집이 좋다며 아파트로 이사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마당에 관심은 없지만 아내도 전원 생활에 만족한다. 가장으로서, 남자로서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주었으니 보람있다고, 그래서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가끔 힘에 부친다.


  멋진 전원 생활은 물 위의 백조와 같다. 우아하게 떠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물밑에서는 분주하게 발을 젖고 있는 백조처럼 여유로운 전원 생활을 위해서는 몸이 부지런해야 한다. 혹시 전원 생활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성향을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퇴근후에 쇼파에 누워 tv 리모콘부터 잡는 사람이라면 전원생활은 어울리지 않는다. 반면에 퇴근후에 분주하게 왔다갔다하며 할거리를 찾기 바쁜 사람이라면 전원 생활에 딱 맞는 사람이다. 나는 서울에 살 때 후자에 해당되는 사람이어서 전원 생활을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은 것을 보면 전원 생활은 엄청난 체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이렇게 힘든 전원 생활이지만 우습게도 나는 이 생활을 벗어나고 싶지가 않다. 

  휴일 오후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받으며 캠핑체어에 앉아 마시는 커피 한잔이 향긋하고

  늦은 밤 음악을 들으며 불멍을 하는 것이 아직 감성적으로 느껴진다. 

  부엌 인덕션에 굽는 고기를 감히 어디 웨버 숱에 굽는 고기와 비교할 수 있겠으며

  마당에서 이웃과 함께 하는 파티의 즐거움은 도시의 시끄러운 고깃집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무엇보다 내 몸 하나 부지런해서 가족 모두가 행복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값진 일일까? 언젠가 때가 되면 우리 가족도 전원 생활을 마치고 도시의 아파트로 돌아가겠지만, 그때까지는 다시 오기 힘든 이 행복을 즐기려 한다.  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


  이번 주말, 잔디를 밀어야겠다.

그래도 이렇게 햇살 좋은 날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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