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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teacher Apr 19. 2021

내 손으로 점집을 예약하다

신통한 하품도사

  나는 미신을 믿지 않는다. 아니, 믿지 않으려 한다.

  특히 남의 운명을 이야기해 주는 신점은 믿고 싶지 않다.

  아무리 용하다고 해도 안좋은 말을 들을까봐 무섭다.

  그런 내가 얼마 전, 점집을 예약했다.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은 아내와 이웃인 강남부부 때문이다.

  아내는 참 신기한 면이 있다. 나는 철학관이나 점집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아내는 처녀 때에도 몇 번 가보았다고 했다. 심지어 임용고시를 서울로 보고나서 불안해서 점집에 가서 물어보았다고 했다. 다행히 그 무당은 붙는다고 했고 실제로 붙었다.

  "야, 어쩌다 맞은 거지. 그러면 네가 무당 때문에 교사가 되었냐?"

  나는 말도 안된다는듯이 비웃었다.

  제주도에 내려온 후, 작년에 아내는 육아휴직을 했다. 여유가 생겨서인지 아내는 가끔 철학관이나 점집을 다녀왔는데 그날은 여지없이 퇴근한 나를 붙들고 들었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겉으로는

  "됐어. 안 들어."

라고 말했지만 어느새

  "그래? 그래서 뭐래? 빨리 말해봐."

내 귀는 활짝 열려 있었다.
  "우리 가족은 제주도에 내려올 운명이었대. 잘 내려왔다고 하더라."

  "그래? 그 사람 용하네."

  이렇게 나도 조금씩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여보! 옆집 OO말이야, 오늘 점보고 왔대. 근데 그 무당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조만간 셋째 생긴다고 했대."

  강남 여자는 며칠 전까지도 우리와 주말마다 밤새 술을 마시며 함께 시간을 보내던 사람이었다.

  "말도 안돼. 거봐! 내가 믿지 말라고 했지? 남편 요즘 바빠서 집에도 못들어 오더라."

  나는 이렇게 말하고 무시해 버렸다.

  

  그런데,

  그런데, 정말로.....

  한 달 후에 셋째가 생겼다.

  뱃속에 있지도 않은 아이를 맞춘 것이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절대 설명이 불가했다.

  그때부터 나는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한 그 사람을 맹신하기 시작했다.

  

  "야, 너도 한 번 다녀와봐."

  차마 무서워 내가 가지는 못하고 아내를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아내가 다녀왔다. 아내 말에 따르면 그 사람은 접신을 하면 하품을 한다고 했다. 하품을 하면서 이야기하는데 정말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맞다고 했다.

  하품을 하면 접신을 한다? 왠지 더 신뢰가 갔다.

  "여보는 서울에서는 계속 쫓기며 산대. 제주도의 기운이 여보를 포용해주는 기운이라서 여보가 내려올 수 밖에 없었던 거래. 여보, 간수치 조심하라고 하더라. 항상 건강검진 받으래."

  공무원 건강검진할 때 비고에 '간수치 추적요망'이라고 꼭 써있었는데 그것까지 맞추는 것을 보고 나는 무릎을 쳤다. 이 사람, 진짜다!


  야, 야, 야! 당장 연락처 줘봐!

  나는 아내에게 그 하품도사의 연락처를 받아내어 전화를 걸었다.

  놀랍게도 전화상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정말 평범한 아줌마의 목소리였다.

  "6월까지는 예약이 꽉차서요.(내가 전화를 건 때는 2월, 더 신뢰가 간다~!) 6월말에 하루 비긴하는데 예약 잡을까요?(하루만 빈다네. 와~! 대박!)"

  나는 당연히 예약을 했다. 그리고 예약을 한 지 두 달이 지난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내가 하품도사와 만나고자 하는 것은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이렇게 욕심없이 내려놓고 사는 것이 맞는지

  확인을 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예약을 취소할까 고민을 하고 있다.

  절대로 그 하품도사의 신통함을 의심해서가 아니다.(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람, 용하다~~!)

  단지 제주도에서 내려놓고 살아 행복한 나인데

  "너 승진해야 해. 너는 승진할 운명이야. 여기서 뭐하고 있어? 가서 경쟁해!"

라고 말한다면 이 말을 듣고도

  '내 멘탈이 감당할 수 있을까? 의연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이다. 지금의 평안과 행복이 깨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아직 나는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직 나의 내면이 단단하지 않다는 반성을 한다.

  사람은 자신의 결정이나 상대방에게 자신이 없을 때 확인을 받으려 한다.

  "사랑해? 그런데 왜 이렇게 표현을 안해?"

  20대 풋내기 시절, 상대에게 했던 이러한 사랑의 요구도 내 자신이 확신이 없고, 자신감이 없을 때 하는 투영인 것이다. 자신의 결정과 사랑에 확신이 있는 사람은 남에게 절대로 묻지 않는다. 묵묵히 그 길을 걷고, 곁에 있을 뿐이다.

  나는 제주도에서의 삶이 행복하다고 믿는다.

  내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내일 전화를 해야겠다.(취...취...취소할 수 있겠지....?)


  제주도에 사니 별일을 다 겪어본다.

  왜 하필 그 무당은 옆집 부부의 셋째를 맞춰가지고

  왜 하필 그 무당은 내 건강검진 내용을 맞춰가지고

  나를 이렇게 흔드는지,

  나는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그럴 수 있겠지.....?


  그런데,

  정말...

  어떻게 맞췄지........?

부채도사라도 찾아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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