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가야금 연주자가 되기로 했다고 말했다
처음 딸 아이가 가야금을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는 아내도, 나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어렸을 때 한 번쯤 가져볼 수 있는 호기심이라고 생각했다. 교육 인프라가 서울처럼 발달하지 않은 제주도이기에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가야금 선생님을 딸아이에게 붙여 주었다. 일주일에 한두번 가야금 레슨을 받은지 2년, 소질이 있으니 대회에 한번 보내보자는 선생님의 말씀에 '전국 국악경연대회'에 나가게 되었고 처음 나간 대회에서 1위를 하였다. 그리고 올해 6학년이 되는 딸아이는 서울에 있는 예술중학교에 진학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신선생, 나중에 결혼해서 혹시 자녀가 음악에 재능을 보이면 어렸을 때 싹을 잘라버려야 해! 안 그러면 나처럼 산다?"
20대 신규교사 시절, 바이올린 하는 딸 아이를 둔 선배교사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선배는 어리둥절해 하는 내 표정을 보며 한 마디를 덧붙혔다.
"딸아이 예중, 예고 보내면서 우리집 40평에서 30평, 30평에서 20평으로 이사 왔잖아. 교사 월급으로 악기비, 레슨비 감당하기 어려워."
농담이 섞인 신세한탄의 이야기였겠지만 이 말이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그 선배의 따님은 서울의 명문대학교 음대에 진학을 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사람들은 국악을 하면 서양악기에 비하여 돈이 덜 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잘못된 상식이다. 내가 가야금을 시켜보니 오히려 서양악기에 비하여 돈이 더 들면 들지, 덜 들지는 않는다. 가야금에 한하여 말하자면 입시용 가야금은 한 대에 1,500만원 정도이다. 거기에 산조가야금, 정악가야금, 25현 가야금까지 세 대를 사야하니 악기에만 4,000~5,000만원 가량이 든다. 레슨비도 초등학생 기준 한 시간에 10만원 정도이니 가야금으로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바이올린이나 첼로 전공자에 버금가는 자금이 필요한 셈이다. 예중, 예고에 진학을 하면 문제가 더 커진다. 각 가야금별 전공 선생님이 다르기에 개인 레슨도 따로 받아야 하며 악기는 연습용, 대회용까지 종류별로 두 대 이상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 가족의 경우는 불리한 점이 한 가지 더 있는데 그것은 지리적인 문제이다. 예술중을 목표로 하고 있기에 딸아이는 정기적으로 서울에 올라가 레슨을 받고 내려오는데 항공비며, 체류비, 교통비까지 한 번 다녀오면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 올 겨울방학 딸 아이는 일주일씩 두 번의 합숙교육을 받았고 한 번 합숙을 할 때면 가계가 휘청인다.
20대 때 선배의 말을 들었을 때는 아버지로서 선배의 모습이 무기력해 보이기도 했지만, 오죽했으면 내게 그런 말을 했을까? 그러면서도 딸아이를 대학교까지 뒷바라지한 선배, 자식이 원하는 것이 분명하고 소질까지 보이는데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고 매몰차게 내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한편으로는 어린 나이에 자신의 길을 찾은 딸이 기특하기도 하다. 솔직한 지금의 심정은 돈은 상관하지 않을테니 도중에 포기하지 말고 노력해서 원하는 것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사람의 인생, 한치 앞을 모른다고 어떻게 서울에서 내려왔는데 다시 서울로 올라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이니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자 한다. 그때 되면 좋은 방법이 나오겠지. 제주에 사든 서울에 살든 내 운명이라면 웃으며 받아들이고자 한다. 어차피 계획을 세워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기에 하루하루 현실에 충실하며 사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믿는다.
딸이 가야금 연주자가 되기로 했다고 말했다.
퇴사는 무슨....
다른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일이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