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J teacher Mar 04. 2024

아내가 서귀포로 발령이 났다

매일 왕복 90km를 운전하는 제주도 선생님 

  아내가 서귀포로 발령이 났다. 

  집에서 3km 거리의 학교로 출퇴근하던 아내인데 45km 거리의 학교로 발령이 나다니, 좋은 시절 다 갔다. 


  제주도는 제주시와 서귀포시 두 개의 행정시를 가지고 있다. 제주도 인구가 약 67만 5,000명 정도인데 제주시에 약 49만, 서귀포시에 약 18만이 살고 있어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인구는 두 배가 넘게 차이난다. 특히 신제주라 불리는 연동과 노형동에만 인구 10만이 모여 살아 인구 밀집도가 높다. 교사를 비롯한 공무원의 경우 직장은 서귀포에 있지만 신제주권에 살며 통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주도 선생님들이 제주시 도심의 학교에서 근무하기를 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때문에 교육청에서는 일정 기간 제주시 도심 학교의 근무가 끝나면 서귀포로 발령을 내서 원활한 인사교류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여보, 정말 가도가도 끝이 없더라."

  지난 2월말 새학기 준비를 위하여 발령이 난 학교에 다녀온 아내가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가 발령이 난 곳은 서귀포에서도 가장 서쪽 끝 바닷가 근처의 학교였다. 한반에 6~8명 정도이고 학교의 규모가 워낙 작아 초중학교로 운영되는 농어촌학교! 그동안 제주시 가장 도심의 대규모 학교에서 편하게 근무하던 아내는 단 한 달만에 극과 극의 학교를 모두 경험하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 편하게 교사 생활했던 사람인데......'

  제주병이라는 불치병에 걸려 무난하게 교직생활을 하던 서울여자를 제주도로 끌고 오다시피 한 나의 미안함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며칠 다니다 보면 금방 적응할 거야. 대신 애들 케어는 내가 다 할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이 말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학교가 개학을 했다. 


  7시 넘어 일어나 8시 10분에 여유있게 출근하던 아내는 6시에 일어나 7시 20분에 출근을 했다. 아내가 출근을 하고 아들과 딸을 깨워 밥을 먹이고 등교준비를 시키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 되었다. 아이들 등교준비를 함께 할 때는 금방 끝이 났는데 혼자 하니 여간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을 간신히 맞추어 아들을 중학교에, 딸을 초등학교에 내려주고 근무하는 학교로 출근을 했다. 매일 아침 두 개의 학교를 돌아 세 번째 학교로 출근을 해야 하는 일이 시작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아이들을 모두 내려주고 아내에게 전화를 해보니 아내는 여전히 운전중이라는 사실이었다. 

  가는데 45km, 오는데 45km 매일 90km를 운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내가 현기증이 났다. 그러고 보면 제주도 사람들은 참 강인하다. 모두들 '이것이 뭐 대수롭다고!'라는 마음으로 아무렇지 않게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같은 학교 선생님들에게 이러한 속사정을 이야기 하면 제주도 선생님들은 모두 별일 아니라는 듯이 한 마디했다.

  "3년만 고생하면 다시 오는데 뭘!"

  그들에게는 '3년만'이라고 느껴지는 시간이 왜 나에게는 '3년씩이나'로 느껴질까? 제주도에 6년을 살았지만 제주사람 되기에는 아직도 멀었나 보다.


  오늘 개학일, 서귀포로 공식적인 첫출근을 하고 돌아온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어때? 학교? 괜찮아? 다닐만 해?"

  "멀기는 한데 좋아. 선생님들도 좋고 아이들도 순수해. 무엇보다 아이들이 8명 밖에 되잖아."

  이미 연애할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내는 참 씩씩한 사람이다. 그러니 

  "제주도 안 가면 나 죽을 것 같아."

라는 내 말에 오리지널 서울여자가 군말없이 따라왔겠지. 매일 왕복 90km를 운전하는 여자, 고맙기는 하지만 아내가 아무렇지 않게 학교를 다닐 수록 나의 미안함은 늘어만 갈 것 같다. 도대체 제주도로 인하여 생긴 나의 원죄의식은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


  아내가 서귀포로 발령이 났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아내의 아침밥을 차려 주어야겠다.

(아내의 인스타에서 퍼온 영상, 아내는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출근합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C3tc3t0SkV8/?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매거진의 이전글 자녀가 음악에 재능을 보이면 벌어지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