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2살이 어린 거의 동년배, 비슷한 경력의 교사로 그와의 만남은 여러 면에서 흥미로웠다.
어느 교육청을 가든 특출난 능력을 지니고 사는 교사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하는데 K는 내가 지금껏 만나본 교사 중에서 가장 스마트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자유자재로 다루었는데 전국의 초등교사가 자주 쓰는 성적처리 프로그램, 자동 반배정 프로그램은 그가 설계하고 개발, 보급한 것이었다. 나는 수행평가 결과만 입력하면 학기말 서술형 교과평어가 나이스에 자동으로 업데이트되는 신기한 프로그램을 제주도에서 처음 써보았는데 그때 느꼈던 전율은 잊을 수가 없다.
"이거 도대체 무슨 프로그램이에요?"
"모르셨어요? 이거 K선생님이 개발한 거잖아요."
"체육전담 K선생님, 그분이요?"
매일 배드민턴채를 등에 메고 체육을 가르치는 수더분한 K교사의 정체를 알게되자 나는 그 사람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학년말 성적, 생활태도, 교우관계, 성격을 1~4단계로 점수화하면 쫘르르~~~고르게 자동으로 반편성이 되는 프로그램을 써보고는 나는확신을 가졌다.
이 사람 천재구나.
서로 다른 면을 가지고 있어 더 끌렸던 것일까? 전형적인 문과생인 나와 전형적인 이과생 K는 가끔 가족끼리 만나 어울리고 술잔을 기울이는 친한 사이가 되었다. 나는 이토록 특출난 사람이 승진에 전혀 관심이 없고 명퇴만 생각하는 것이 신기하고 아까워
"선생님은 왜 승진 안 해요? 머리도 좋은 사람이!"
라고 물어보았는데 K의 대답도 인상적이었다.
"저는 승진하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제가 좀 독단적인 성격이 있어서 저 같은 사람이 관리자가 되면 선생님들이 힘들어져요."
지나친 이타심일까 아니면 겸손함일까? 나는 자신을 그렇게 냉철하게 보는 K같은 사람이야말로 교장이 되면 능력있고 민주적인 관리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승진할 수 있는 똑똑한 사람이 주말이면 캠핑을 다니고, 사람들을 귤밭으로 초대해 바비큐 파티를 하는 등 워라밸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깝게도 느껴졌다. 하지만 K교사는 주위에서 어떤 말을 해도 절대로 흔들리거나 아쉬워하지 않았다.
최근 몇 달 만나지도, 연락도 하지 못해 안부가 궁금하던 찰나,
인스타에 익숙한 이름이 올라와 깜짝 놀랐다.
교사 K!
인스타 계정을 열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올라온 사진에 더 놀랐다.
한창 학교에 있어야 할 시기에 인스타에 올라온 것은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유럽에서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작년에 술 한잔 할 때
"내년에 동반휴직하고 유럽이나 가려구요."
라고 했던 말이 바람이나 농담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진짜로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 놀라웠다. 올라온 사진 속 K교사의 표정과 아들, 딸, 아내의 모습을 보며
'이 사람이야말로 자신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진속 웃음과 미소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내면과 가진 자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K교사를 생각하며 나를 되돌아본다.
지금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을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해 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일을 하며 만족하고 있을까?
나는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중심을 잡고 살고 있는 것일까?
질문을 던지고 한참을 생각해 본다.
이내 고개를 젓는 나를 보며 K교사처럼 내면이 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오늘 하루도 얼마 남지 않았다.
글을 한 편 더 쓰고 자야겠다.
얼마전 교원공제회 <The-K매거진>과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5월호에 인터뷰 기사가 탑재되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