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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teacher Jun 30. 2024

이제는 교무실을 벗어나야겠다

40대 부장교사의 생존기

  하긴 오래 버티었지.

  이제는 교무실을 벗어나야겠다. 


  내가 교무실 연구부장 자리로 들어오게 된 것은 작년 3월이었다. 서울에서 부장교사로 근무하던 내가 제주도에 내려왔다는 것은 아무런 욕심 없이 살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는데 결국은 돌고돌아 부장교사로 다시 임명이 되었다. 내가 연구부장이라는 중책을 하기로 한 것은 순전히 나이와 경력 때문이었다. 내가 안 하겠다고 버티면 누군가 억지로 해야 할 것이고  이 정도 근무했으면 선배교사로서 후배들을 위하여 일하는 것도 의미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작년 연구부장으로 근무하며 교장님의 요청에 의해 한 달을 야근하며 '교육부 연구학교 계획서'를 작성하였고 연구학교에 선정되었다. 연구학교에 선정이 되니 계획서를 쓴 내가 연구학교를 운영해야 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답이었다. 

  교무실에 근무하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교무실에 근무하면 누구보다 학교가 돌아가는 상황을 빠르고 쉽게 알게 되고 학교 운영의 주체로서 보람도 있다. 일하는 만큼 대우와 인정도 받는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내가 승진에 대한 의지가 크지 않다는 점이었다. 


  지난주 교무실 선생님들 사이에서 가장 큰 화제는 승진인사였다. 교감연수 대상자 명단과 장학사 최종 합격자 명단이 공문으로 수신되었다. 그리고 우리 학교 병설유치원 선생님 한 분이 장학사가 되셨다. "누구는 학번이 몇 학번인데 벌써 교감 승진 대상자가 되었네. 누구는 승진 관심 없다더니 장학사가 되었네." 등 교무실을 떠도는 이야기는 한 귀로 듣고 흘리려 해도 복잡한 감정을 내게 안겨 주었다. 그들의 나이와 경력이 대부분 나와 비슷한 40대이기에 나도 모르게 비교심리가 작동하였다. 그러면서 다시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교무실을 벗어날 때가 되었구나.'


  제주도에 처음 발령을 받고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흔들림이 없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한없이 즐거웠고 아이들과 학부모는 나를 좋아했다. 담임을 하는 2년 동안 단 한 건의 민원 전화조차 없었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자부심이었다. 아이들과 있을 때는 누가 승진을 하건, 누가 어떻게 되건 관심조차 없었다. 그건 그들의 인생일 뿐이었다. 하지만 교무실에는 승진을 한 사람이거나 승진을 준비하는 사람만 있어 '승진'이라는 단어에 무감각하기가 쉽지 않다. 

  "신선생님도 이제 준비해야지."

라는 주변의 이야기에 가슴이 요동칠 때도 있다. 이것이 모두 내가 교무실에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있으면 마냥 행복했지


  내가 제주도에 내려오고 싶었던 때를 떠올려 본다.

  내가 꿈꾸었던 것은 낮에는 제주도의 푸른 환경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글을 쓰며 사는 작가의 삶을 꿈꾸었다.

  어떤 외부의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행복을 꿈꾸었다.

  제주도에 내려와 지금까지 비교적 균형잡힌 시간을 보내왔다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흐트러지는 감정과 무너지는 균형에 지쳐간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주관대로 세상을 살기가 쉽지 않다. 자꾸만 주위와 비교하게 되고

  '나는 지금껏 무얼 했나'

하는 자괴감에 조급해지기 일쑤이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 놓여진 길은 한 갈래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잘 가지 않는 길을 걸을 수도 있으며 다소 좁고 돌아가는 길이어도 그 길을 걸으며 더욱 큰 의미와 행복을 얻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선택에 대하여 흔들리지 않는 당당한 삶의 자세이다. 그렇게 굳건한 내면을 가질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성공한 삶이다. 

  

  제주도에 내려와 아이들을 가르치고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보며 글을 쓰던 시간을 떠올려 본다. 

  그 누구보다 행복하고 흔들리지 않았던 그때가 그립다.

  다시 행복해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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