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과 차박 사이
이제는 캠핑을 접어야 하나? 제주도에 내려와 한때 스스로를 '찐캠퍼'라고 부르며 주말마다 캠핑을 다니던 때가 있었다. 리빙쉘텐트, 1인텐트, 원터치 텐트에 이어 루프탑 텐트까지 멀쩡한 차 지붕에 올리며 캠핑에 설레던 때도 있었다. 차박을 위해 차를 바꾸고 온갖 캠핑장비를 모두 사모을 기세로 택배를 시켜대던 때도 있었다. 넘치는 캠핑장비에 마당에 창고를 짓고, 캠핑을 가지 못하는 날에는 마당에서 불멍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렸는데......
이제는 옛날 일이 되어 버렸다.
올봄, 단 한 번도 캠핑을 가지 못했다. 캠핑을 하기 가장 좋은 계절인 봄, 나는 캠핑장 근처도 가보지 못했다. 이제는 제법 컸다고 집에서 노는 것이 더 좋다는 아이들과 태생부터 호텔을 좋아하는 아내 덕분(?)에 캠핑은 뒷전으로 밀려 버렸다. 모든 일이 손발이 맞아야 하는 법인데 가족들이 호응을 안 해주니 나도 점차 캠핑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들었다. 게다가 제주도 가장 번화가 도심의 아파트로 이사를 온 덕에 우리 가족들은 오랜만에 도시의 편리함에 취해 있었다. (주변에 편의점이 몇 개야....?)
2년 전 야심차게 지붕에 올렸던 루프탑 텐트를 당근에 1/3도 안되는 가격으로 팔아버렸다. 가로바, 루프탑텐트, 어넥스, 타프까지 300이 훌쩍 넘는 풀세트를 단돈 90만원에 올리니 정신없이 톡이 오고 그중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 한 시간도 안 되어 지붕에서 떼어 가져가 버렸다. 그분은 '이래도 되나?'라는 표정으로 연신 "감사하다."라는 말을 했다. 나는 아깝기 보다 홀가분했다. 올해 한 번도 펼쳐보지 못한 무거운 텐트를 매일 지붕 위에 얹고 출퇴근하고 아이들 픽업을 하며 힘들게 운전을 하는 덕에 가벼운 접촉 사고가 두 번이나 났다. 차량 연비는 나오지 않고 무거워진 차의 무게만큼 몸도 마음도 무거웠다. 나는 이렇게 시원한데 의외인 것은 아내의 반응이었다.
"꼭 지금 팔아야 해? 가을에 오름 가서 루프탑 텐트 펴면 얼마나 좋은데......"
'그러게, 내가 가자고 할 때 좀 가지.'
라는 생각을 하며 아내에게 소심한 복수의 말을 남겼다.
"놀러가고 싶으면 호텔 가. 너 호텔 좋아하잖아."
오늘 휴일 아침, 집에서 바라본 제주도의 날씨가 기가 막혔다. 15층 아파트에서 보이는 하늘과 바다의 풍경에 집에 있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런 날 캠핑 가면 정말 좋은데.'
저절로 드는 생각에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박을 위해 샀던 카니발을 정리했다. 지난주 거금을 들여 실내외 세차를 맡긴 덕에 차에 타면 향긋한 냄새까지 났다. 이 차를 샀을 때 차박을 한다고 레일을 개조하고 모기장을 설치하고 각종 차박용품을 구입해서 차안에 가득 넣어두었는데, 다시 차안을 정리하니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캠핑의 욕구가 끌어올랐다.
아무래도 이제는 혼자 차박이나 다녀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은 커서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아내도 집에서 조용히 책 보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니 혼자 조용히 차박을 다니며 낭만을 즐겨야겠다. 잠시 도시와 아파트의 편리함에 젖어 제주도에 사는 기쁨을 잊었었다. 그러면서 내가 항상 했던 말을 떠올려 본다.
'제주도는 밖에 나와야 제주도이다.'
이제는 캠핑을 접어야 하나?
아니, 이제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