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우리 가족은 애월 시골 마을에서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제주도 사람들이 제주도의 강남이라고 부르는 연동의 신축 아파트 연세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대형 아파트 단지와 병원, 각종 편의시설이 밀집한 노형동과 연동을 제주도의 강남이라 부른다. '아무리 발달한 곳이라고 해도 그렇지 우리나라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강남과 비교를 하다니 정신이 나간 것 아니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제주도내 아파트 가격이 가장 비싼 지역도 이곳이니 '제주도의 강남'이라는 말이 꼭 틀린 말은 아니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 우리 가족은 한동안 도시가 주는 편리함에 흠뻑 취해 있었다.
"아빠, 편의점이 아파트 주변에 세 개나 있어."
애월에 살 때는 편의점에 가려면 무조건 차를 몰고 가야 했다.
"여보, 생맥주 집이 주변에 너무 많은데? 드디어 캔맥주에서 벗어나는 거야?"
애월에 살 때는 가까운 곳에 술집이 없어 생맥주는 꿈도 꾸지 못했다.
"집앞에 소아과가 있어. 병원이 코앞이야."
아이가 아프면 옷을 입히고 차에 태워 몇 킬로미터를 달려 시내로 나와야 했던 우리 가족은 걸어서 병원에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그뿐인가? 공항은 집에서 10분 이내의 거리여서 육지에 가는 것이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다.
"오늘은 뭐 먹을래? 뭐 시켜줄까?"
제주도에 살며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애월 시골에 살 때는 배달 오는 음식이 거의 없어 배민을 켜면 '텅~~'이라는 글자에 우울해 했었다. 이쯤 되니 아이들이 더 신이 났다. 마라탕, 탕후루, 피자, 치킨....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지금 서울에서의 생활과 똑같은 편리함을 제주도에서 느끼며 살고 있다.
그래서 좋냐고?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는 세상의 이치는 진리인 모양이다. 우리 가족은 도시의 편리함을 누리는 대신 제주살이의 낭만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애월 시골에 살 때는 주말이면 마당에서 불멍을 즐기고 바비큐 파티를 하고, 캠핑을 다니며 살았는데 요즘은 아이들도, 우리 부부도 집에만 있으려 한다. 아파트 인근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저녁이면 부부끼리 인근 맥주 맛집을 찾아 다니는 것이 낙이다. 가끔은
'이러려고 제주도에 내려왔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음식점과 호프집에 가는 삶은 서울에서 더 쉽게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몸은 편리하고 생활은 쾌적해졌지만 가슴 속 어딘가가 허전한 느낌이다. 직장마저 노형동에 있어 3km 이내 도시에서 도시로 퇴근을 하다보니 시골이 그리워진다. 특히 요즘은 제주도에서도 제주의 자연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서귀포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봄이면 노란 유채꽃이 가득하고
여름이면 수국이 길가에 탐스럽게 피어 있으며
가을이면 솜털 같은 억새가 길가를 포근하게 물들이고
겨울이면 주황빛 감귤이 익어가는 서귀포!
그곳이 그리워진다.
서귀포야말로 제주도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제주도의 수국과 억새는 참 예쁘다.
처음 제주도에 내려왔을 때는 제주도의 까만 돌맹이만 봐도 가슴이 설렜는데 시골에 살아보니 도시의 편리함을 그리워했다. 도시의 아파트에 편하게 살아보니 다시 제주도 시골이 생각나는 것을 보면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 '다시 제주도 시골로 가야 하나?' 제주도에 얼마나 오래 살 지는 모르지만 사는 동안은 제주스럽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그러고 보니...매일 아침 한라산을 보며 출근하고 바다를 옆에 끼고 퇴근하던 그때가 참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