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면 술도 사람과 똑같다.
술을 끊겠다고 선언한 지 3주가 되었다.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나는 금주선언을 하고 빈 술잔도 입에 대지 않았다. 말 그대로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날은 덥고 운동을 하고 오면 생맥주 한 잔이 그렇게 그리웠다. TV를 보다가 광고 속 맥주 마시는 장면이 나오면 저절로 생각이 나서 몸이 편의점 쪽으로 들썩거렸다. 하지만 온 가족 앞에서 약속을 한 것이라 자존심이 있어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3주가 지난 지금 내가 첫 번째로 느끼는 것은 술을 끊는 것은 담배를 끊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담배를 피워본 적은 없지만 주위를 보면 담배를 끊고 금단현상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잘 버텨내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다시 담배에 손을 대었다. 하지만 술은 반대이다. 처음에는 참기가 어렵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생각이 나지 않는다. 또 다른 차이점은 담배는 혼자 피는 경우가 많아 자신과의 싸움이지만 술은 대부분 사람들과 함께 마시기 때문에 술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마실 일이 확연히 줄어든다.
나는 의지가 약한 사람이다. 그것을 잘 알기에 금주를 선언하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카톡의 프사 문구를 바꾸는 일이었다. "금주선언", "금주중"이라고 문구를 써놓으니 술 마시자고 연락오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도 술자리가 있어도 나는 빼놓고 만나는 모양이다. 그렇게 되니 내 자신에게 쓰는 시간이 늘어나고 생활이 규칙적이 되었다. 잘 알지 않는가? 술자리를 진하게 하고 나면 그 다음날이 사라지는 것을. 지금은 처음과 다르게 별다른 의지나 각오 없이도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다. 가끔 시원한 생맥주가 떠오르면 냉장고에 항상 비축해 놓고 있는 탄산수를 마시며 이겨낸다. 이제는 금주가 큰일이 아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일어나는 일!
첫째, 뱃살이 빠진다. 헬스를 시작한 지 3년이 되어도 내가 바프를 찍지 못하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술이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술자리를 좋아하는 나의 성격상 매몰차게 술잔을 거절하지 못하기에 한잔 두잔 마시다보면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극 F성향을 가진 사람으로서 술만 들어가면 세상 행복하고 사람들이 좋은지 이것도 참 병이다. 그러다 보니 5일 내내 운동하고 2일을 술로 쉬어버리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금주 3주만에 뱃살이 빠졌다. 요즘은 희미하게 보이는 식스팩 복근을 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확실하다. 술은 뱃살의 근원이다.
둘째, 생활이 규칙적이 된다. 술을 마시지 않다보니 밤에 할일이 별로 없다.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 전부인데 그러고 있다보면 졸리고 어느새 잠이 든다. 운동을 하고 있다면 잠이 더 잘 온다. 밤에 일찍 자니 다음날 일찍 일어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규칙적인 사람이 된다.
셋째, 약속이 사라진다. 내가 금주를 시작하게 된 날이 다행스럽게도 방학중이었는데 원래대로였으면 우리 가족은 방학때 육지에서 오는 손님들로 인하여 분주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바프를 찍고 금주중이라는 것을 알기에 제주도로 놀러오는 친척이나 지인들이 없었다. 가까운 곳에 사는 지인들도 술자리에는 나를 부르지 않기에 내 시간을 온전하게 나를 위하여 쓸 수 있다.
넷째, 가정경제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음주에 쓰이는 돈이 의외로 많다는 것! 아내와 단 둘이 술집에서 술을 마셔도 5만원은 쉽게 넘고, 집에서 마신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안주까지 갖추고자 하면 적지 않은 돈이 든다. 이러한 돈들이 사라지니 가정 경제에 도움이 된다. 요즘은 술에 쓰지 않는 돈으로 야채나 단백질 음료 등 건강한 식품에 쓰고 있다.
다섯째, 환경보호에 도움이 된다. 내가 금주를 선언하면서 아내도 반강제적으로 함께 금주를 하게 되었는데 일주일에 배출되는 쓰레기의 양이 반으로 줄었다. 특히 캔 종류는 거의 배출이 되지 않고 금주 전과 후를 비교해보면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줄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패트병, 유리, 캔, 플라스틱까지 술과 관련된 쓰레기는 많다. 술도 줄이고 쓰레기도 줄이니 일석이조다.
처음 금주를 시작할 때는 바프도 찍어야 하고 딸아이의 입시문제도 있어 10월까지만 금주를 할까 했는데 한결 가벼워지고 건강해진 몸을 느낄 때면 계속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술 마시는 것이 뭐 좋은 점이 있다고 이제까지 마셔왔는지......
그러고 보면 술도 사람과 똑같다.
안 보면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