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를 다룬 영화들
제주도에 내려오기 전 나는 항상 밤 9시가 넘어 퇴근을 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이 퇴근시간이 빠르고 일정하다는 것인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누구를 원망할 필요가 없다. 다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매일이 회의였고, 초과근무였다. 밤늦게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한 나에게 유일한 위로는 맥주 한 잔을 하며 제주도 관련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제주도에 내려오기 전 제주도가 배경이거나 주제인 영화는 거의 본 듯 하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왜 그리도 제주도를 그리워했는지 이상할 정도이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제주도에 와서 보니 나같은 사람이 신기할 정도로 많았다. 결국 그런 사람들이 제주도에 내려온다.
제주이주, 제주살이 열풍이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제주도 인구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나처럼 제주도이주를 꿈꾸는 육지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모양이다.
2012년도에 개봉하여 제주도 이주에 불을 붙인 영화. 서울에 있을 때 나는 이 영화를 50번도 넘게 보았다. 엄태웅과 한가인이 차를 타고 달리던 구좌읍 해맞이해안도로와 건축학개론 촬영지인 남원읍 '서연의 집'은 마치 성지순례하는 것처럼 여러 번 가보았다. 영화에 나오는 한가인이 다녔다는 초등학교는 서귀포시 표선면의 '표선초등학교'로 어쩌면 여기서 근무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문장처럼 스토리가 아름답고 배우들이 멋진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영화이다.
의외로 이 영화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제주도 이주를 결심하고 얼마 안 되어 우연히 틀었던 케이블 영화채널에서 새벽까지 보았던 영화.(다음날 출근해서 엄청 피곤했다.) 2014년에 개봉했는데 처음부터 이 영화는 극장 상영이 목적이 아닌 케이블 채널용 영화였다. 중국인을 타겟으로해서 중국 수출이 목적이었던 영화로 잔잔한 여운을 주는 감성적인 영화이다. 여주인공인 김지원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한동안 김지원에 빠져있었다. 소지섭은 원래 간지나고 김지원은 사랑스럽다.(러블리 러블리하다~) 영화의 배경이 된 카페 '매기의 추억'의 사장님 부부와는 친한 지인이 되었다. 정말 대놓고 제주도의 예쁜 곳을 찾아다니며 광고하는 영화. 도시에 살며 지칠 때 제주도가 그립다면 이 영화를 보면 된다. 파스텔로 그린 그림처럼 감성 부드러운 영화이다.
2016년에 개봉한 영화로 연기의 신! 윤여정 선생님과 김고은이 주연한 영화이다. 해녀가 많은 하도리와 평대리쪽에서 주로 촬영한 영화로 제주도 동쪽 바다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영화에서 혜지(김고은)가 오름에 올라 그림을 그리는데 아부오름으로 마음이 복잡할 때 나도 자주 오르곤 했다. 오름 정상에서 분화구를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제주도 전통 마을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윤여정 선생님의 연기에 정말 눈물을 쏙 뺀 영화이다. 윤여정 선생님의 치매 연기는 정말 같았다. 연기는 정말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마침 어제 윤여정 선생님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역시 명연기는 세계 어디서든 통하는 것 같다. 격한 감동을 느끼고 싶은 감성이 메마른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제주도에 이주한 후 본 제주 영화 '애월', 2019년에 개봉했는데 사실 난 이 영화를 개봉 전부터 알고 있었다. 친한 카페 '매기의 추억'(영화 '좋은 날' 촬영지) 사장님이 영화 한 편을 더 촬영하고 갔다고 미리 말씀해 주셔서 이천희가 주연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얼마 전 tv를 틀었는데 볼만한 독립영화로 소개하고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인 '애월'이 배경으로 나도 아는 장소(자주 갔던 동네마트, 애월의원, 카페 등)가 많이 나와 신기했다. 내가 지금 서울에 있다면 매일 보지 않았을까 생각할 정도로 제주도가 예쁘게 나온다. 제주도의 가장 최근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제주도에 살면 정말 술을 자주 먹는다.
2016~2017년도는 제주이주 열풍이 극에 달하던 시기이다. 매년 제주인구가 1만씩 늘었다. 이때 제주도 관련 tv 프로그램이나 영화가 많이 개봉했는데 tv방송으로는 '효리네 민박'과 영화로는 '계춘할망', '올레'가 대표적이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박희순이라는 배우를 보고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영화배우의 변신은 한계가 없다. 어쩜 그렇게 '남한산성'과 다르게 가벼운 캐릭터로 나오는지... 그래서 더욱 멋있었다. 개인적으로 신하균은 제주도와 잘 어울리는 배우로 느껴진다. 제주도의 다양한 게스트하우스와 사려니숲, 산방산, 올레길 등 유명한 관광지를 감상할 수 있다. 현대인으로서 가끔 일탈을 꿈꿀 때 이 영화를 보면 된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현대인의 마음이 잘 어우러진 영화이다.
제주도의 아픈 역사까지 자세히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면 4.3.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영화를 보는 것이 힘들었다. 제주도의 아프고 무거운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직은 버거운 느낌이다. 나에게 제주도는 항상 나를 위로해주는 따뜻한 존재인데 어두운 부분이 있다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이러한 아픔도 사랑하게 될 때 진정한 제주도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람바람바람' 신하균은 제주도 영화에 자주 출연한다. 영화' 좋은 날'을 찍은 배우 소지섭은 제주도를 사랑해서 드라마 '맨도롱 또똣'에도 까메오로 출연했다고 한다. 신하균도 연달아 제주도 관련 영화를 찍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을까?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올레' 속 신하균이 '바람바람바람'에 이어서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런 생각없이 가볍게 보고 싶은 영화가 필요하다면 제주도의 예쁜 돌담집이 배경인 '바람바람바람'을 추천한다. 성인들을 위한 코미디 영화!
제주도에 이주한 지 4년차인데 지금도 이런 영화들을 본다.
제주도는 보고 있지만, 살고 있지만, 느끼고 있지만
아직 그립다.
언제쯤 이 병이 나을지......
정말 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