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시간과 사적 시간, 그 아슬아슬한 균형에 관하여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 나는 친한 후배 한 명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내가 서울에 오는 목적이 딸아이를 케어하기 위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기에 내가 바빠지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도 나는 개인적인 만남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자발적 고립을 택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3개월의 시간 동안 나는 철저히 고립된 생활을 했다. 서울에 친구가 없으니 직장에서 퇴근을 하면 딸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혼자였다. 아침에 일어나 딸아이 아침밥을 차려주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퇴근하고 딸을 데리러 학교에 가고. 이것이 내가 서울에서 지내는 일상이다.
서울에 오기 전 나는 직장에서 매우 바쁘게 지냈다. 직장에서 툭하면 야근을 하고 업무의 압박에 지쳐 지냈다. 불과 몇 달 사이인데 그때와 지금은 180도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은 평교사로 업무의 강도가 약하니 야근을 할 일이 없고 자연스럽게 내게 주어진 시간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이 시간이 어색해서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면 지금은 혼자서 헬스장에 가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연수를 들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여유시간이 늘어나니 내가 처음 느낀 것은 '글이 너무 쓰고 싶다!'였다. 브런치에 월, 화 연재하는 글을 지금껏 한 번도 밀린 적이 없이 착실하게 쓰고 있다. 운동도 내가 하고 싶은 때, 내가 가능한 때 갈 수 있으니 압박감보다는 즐거움으로 느껴진다. 작년에 바프를 찍었는데 올해 '한 번 더 찍어볼까?' 고민을 하고 있다. 자신에게 투자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표정도 밝아졌다고 하니 혼자 지내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복잡해서 요즘은 모임이라도 하나 가져볼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루종일 대화하는 사람이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딸밖에 없다보니 입을 닫고 지내는 시간이 많다. 책을 보는 일, 글을 쓰는 일, 운동 모두 혼자 하는 일이니 사람을 대할 일이 많지 않다. 내가 원래 이렇게 폐쇄적인 사람은 아닌데 혼자 지내다 보니 우울해질 때가 있다. 퇴근후 어두운 작은 오피스텔로 들어갈 때면 서글프다.
지난주 수요일, 새로운 학교에 부임한 지 석 달 만에 동료교사의 교실에 찾아갔다. 올해 영어전담교사로 지내며 교실에 혼자 있다보니 다른 교실을 갈 일이 없었는데 처음 학교에 부임했을 때부터 환대해주던 교사가 생각나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다음에 맥주 한잔해요. 저희끼리 만나는 선생님들이 있는데 초대해도 되지요?"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동료교사에게
"그럼요. 꼭 초대해 주세요."
라며 교실문을 나왔다. 서울에 와서 처음 느껴보는 사람 사이 따뜻한 정에 벌써 그 모임이 기다려졌다.
친구가 없다고 슬픈 것만은 아니다.
혼자 있으면 사색하고 고민할 시간이 많아지고
자신에게 투자할 시간이 많아지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모든 것이 생각하기 나름, 받아들이기 나름 아니겠는가.
중요한 것은 사회적 시간과 사적 시간 사이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며 사는 것이다.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고 너무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좋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없는 것도 좋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오늘 월요일, 퇴근후 불꺼진 자그마한 오피스텔로 들어왔다.
얼른 직장동료에게 술 한잔 하자고 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