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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예찬론

- 학교가 휴업한 날

by JJ teacher

"좀 부지런해져야 하는데, 너무 게을러."

주말에 집에 있을 때 내가 이렇게 말하자 아내가 의아하다는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자기 얘기한 거야? 게으른 사람 다 얼어죽었네. 난 자기가 집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본 적이 없어. 퇴근하면 잔디 깎고, 뭐 고치고, 책 보고, 글 쓰고. 공구통 들고 왔다갔다 뭐 할 일 뭐 없나 찾아다니는 사람 같아."

아내가 그런 말을 할 때도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어제부터 학교가 이틀 휴업을 했다. 어린이날에 이어 학교장재량휴업일을 이틀 배정한 이유였다. 출근을 안 한 것도 좋은 일이지만 더 좋은 것은 아내와 아이들 학교는 휴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말 처음으로 대낮에 집에 혼자 있게 되었다.

"나 이틀 동안은 정말 아무 것도 안하고 놀거야. 말리지마."

나는 아내에게 선전포고를 하듯이 큰소리를 쳤다. 정말 그렇게 게으름을 필 줄 알았다.

재량휴업일 여유로운 아침

재량 휴업 첫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잔디를 밀었다. 오전이 갔다.

타운하우스 전체 수압이 약해졌다고 주민들을 대표해

읍사무소 상수도과장을 만나고 왔다.

텐트를 꺼내 햇빛에 널었다.

창고를 정리했다. 오후가 갔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다.

아이들이 왔고 아내가 퇴근했다.


재량 휴업 둘째 날,

당근마켓에 불필요한 물건을 올리고 팔았다.

아들 킥보드를 구하러 15km를 운전해 다녀왔다.

저녁에 손님이 온다고해서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바베큐 그릴을 청소했다.

글을 쓰고 싶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다.

아이들이 왔고 아내가 퇴근했다.


그렇게 이틀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결국 못 놀았다.




"집에 있었는데 왜 이리 바쁘지?"

내 말에 아내가 말했다.

"그 말 몰라?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


돌이켜 생각해보면 서울에서 살 때 나는 아무 것도 안하고 있으면 불안했다. 학교에서 퇴근을 하면 영어회화학원을 갔고(무려 3년이나 다녔다.) 대학원 석사를 했고,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신춘문예에 낸다고 동화를 쓰고 또 썼다. 퇴근하고 글을 쓰다가 밤을 새다시피하고 출근을 했다.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았다. 주말에 특별히 할 일 없이 집에 있으면

'글 써야 하는데, 영어공부해야 하는데...'

라며 불안해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뒤쳐지는 것만 같았다.

"여보는 불안증있는 사람 같아. 그냥 좀 가만히 쉬면 안돼? 그냥 집에 있어도 좋잖아."

아내는 나만 보면 이렇게 말했다. 제주도에 내려와서는 이런 증상이 좀 나아진줄 알았다. 하지만 공구통 들고 남의 집 문이나 고쳐주고(지난주에는 옆집 방충망을 내가 갈아주었다.) 아이들 고장난 자전거 고쳐주러 다니고 있는 것을 보면 나의 불안증세는 여전하다. 뭐라도 해야 한다. 정말 문제이다.

이제는 남의 집 방충망까지 갈아준다.

요즘 전국적으로 캠핑열풍이 불고있다. 코로나시대를 맞아 캠핑장을 찾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고 캠핑장비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캠핑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불멍'이다. 불을 보며 멍~~하고 있는 불멍! 현대인들이 지치긴 정말 지친 모양이다. 나는 캠핑장을 가지 않아도 집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불멍을 한다. 이때만큼은 정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멍하니 불을 보고 들어오면 내 몸이 충전된 것처럼 힘이 솟는다.

'불멍'이야말로 게으름의 정석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타는 불꽃만 몇 시간이고 바라보는 것, 얼마나 생산성 없는 일인가? 그런데도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을 보면 현대인들에게 게으름은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인것 같다. 예전에는 '게으름'을 죄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게으름은 이제 죄가 아닌 현대인의 처방약이다.


"나이들어 봐라. 나이들어서 애 낳고 키우다 보면 부모 마음 알게 될 거야. 너같은 자식 한 번 낳아봐. 부모들이 왜 그랬는지 알게 될테니까."

어른들이 정말 많이 했던 이 말. 나이들어 애 키우고, 나 같은 자식 낳아보니 알겠다. 이 말이 얼마나 잘못된 말이었는지. 요즘은 우리 부모님 세대가 불쌍하게만 느껴진다. 게으름을 죄악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 부모님들은 바쁘게만 살았다. 돈돈돈하며 여행 한 번 가기 어려울 정도로 여유가 없었다. 자식들을 위해 그렇게 사셨으니 감사한 일이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너는 나같이 아둥바둥 살지 마라. 적당히 즐기면서 살아."

나이들면 부모를 이해할 것이라고 말하던 부모들이 생을 마감할 때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 유언도 똑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처럼 적당히 게으름도 피우면서 여유롭게 살고 싶다.



게으름도 피워본 사람이 피운다고

아직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하지만 곧 익숙해질 것이다.

나는 제주의 파란 하늘을 자주 보고

맑은 공기를 느끼며 호흡하고

파도소리를 생생히 들으며

게으름을 피고 싶다.

건강한 게으름뱅이가 되고 싶다.

평일 대낮에 처음으로 보는 거실 창문 밖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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