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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teacher Jun 20. 2021

점집을 다녀오다

하품도사를 만나다

  점집에 다녀왔다.

  지난 4월 브런치에 '내 손으로 점집을 예약하다'라는 글을 올리며 예약 취소를 고민한다고 했는데...

  https://brunch.co.kr/@5c88599d157244a/25

취소하지 못했다. 이유를 말하자면 내가 가진 의문들이 몇 가지 있었다. 누군가 꼭 알려주었으면 하는, 확인 받고 싶은 질문들이 있었다. 몇 년 동안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내가 왜 제주도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나에게는 누구도 시원하게 대답해주지 못하는 의문이다.

  "비겁한 변명입니돠~~~!!"

라고 누군가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진지했다.


  점집을 찾기 전 날, '내가 알고 싶은 것'이라는 제목으로 질문 리스트를 만들었다. 총 10개의 질문을 정리해서 출력한 후, 클립보드에 펜과 함께 꽂아두었다. 약속 날 아침, 경건한 마음으로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했다. 출근할 때보다 옷을 단정하게 입고 '하품도사'님을 만나러 갔다. 처음 전화를 한 것이 2월 말이었으니 거의 넉 달을 기다려 그 분을 만나러 갔다.

점집 앞에서, 들어가기 전

  무당이 사는 곳이라 으스스한 분위기의 집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장소가 의외이다. 평범한 빌라 1층이다. 방 하나에 신을 모시고 점보는 공간을 꾸며 놓았다. 처음 점을 보는 것이라 별 상상을 다했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너 올 줄 알았어."

라며 오싹하게 할 줄 알았는데 정말 평범하게 생긴 아기 엄마(국가방역정책도 잘 따르신다. 마스크를 한 시간 동안 한 번도 벗지 않으셨다.)가

  "어서 오세요. 여기 앉으세요."

라며 웃으며 맞이하신다. 내가 자리에 앉자 향을 피워 자신이 모시는 신께 예를 드리신다.

  "본인 것 보시려고?"
  휘파람을 불어 신을 불러들인다.  

  

  휘이~~~

  눈을 감는다.

  하품을 한다.

  이야기가 시작된다.


  고 3때 노트필기도 이렇게 하지 않았다. 미친듯이 받아적었다. 내 머릿속에서

  '어떻게 알았지? 와~~ 정말? 아, 그랬구나.'

라는 말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제주도에 잘 내려왔단다. 서울에서 계속 살았으면 마음에 큰병이 생겼을 것이란다. 내 사주가 물을 건너는 사주란다. 해외를 가던지, 제주도에 오던지 둘 중 하나는 했을 것이란다. 다른 생각하지 말고 정년까지 교직에 있으란다. 노후도 제주도에서 보내란다. 30대 때는 운이 막혀 있었고, 지금부터 서서히 풀리고 있다고 한다.

  "집안이 위가 좋지 않아. 정기적으로 건강검진 잘 받아야 해. 다리가 좀 약하지 않아? 무릎이랑 종아리, 발목쪽이 안 좋은 것으로 나오는데?"

  이 말에 소름이 돋았다. 한때 배드민턴에 빠져서 거의 매일 배드민턴을 쳤는데 그 때 종아리, 발목에 무리가 와서 그만 두었다. 30대 초반에 십이지장궤양으로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안 거야?

  

  한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이제 힘든 일 없으니까 편안하게 살아도 돼."

  이 말에 마음이 편해진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점을 보는구나?'

  무엇인가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

꼭 한 시간이다. 참~~ 알찼다!!

  집에 돌아와 주차를 하기도 전에 나보다 먼저 하품도사를 만난 옆집 대기업 휴직 사원이

  "뭐래요? 뭐래요?"

라며 눈을 반짝이며 뛰어온다. 대충 있었던 일을 얘기한 후,

  "점 처음 봤는데 신기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네?"
라고 말하자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맞아요,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으려고 점보는 것이에요. 아마 원하는 얘기를 못 들었으면 들을 때까지 다른 집 찾아 다닐 걸요? 마음 편해지려고."


  사람에게 팔자, 운명이라는 것이 있을지 모르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떤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다. 누군가 바른 조언을 해주어도, 그 길이 아니라고 해도 기어이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그 순간만큼은 주위의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는다. 사주를 보고, 점을 보는 것은 조금이나마 마음 편하게 그 길을 가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서울의 삶을 정리하고 제주도에 내려온 것이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행복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섬에 살다보면 가끔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나만 뒤쳐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제주도에 사는 것이 정말 옳은 결정이었는지.'

  어쩌면 내가 점을 보러 간 것은 이 말을 듣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닐까?

  

 정말 잘 내려왔어. 제주도가 편안하게 품어주는 사주야.


  다행히 이 말을 들었다. 마음이 편안하다.

  '그래서 이렇게 잘 살고 있구나.'

  하품도사의 말을 들으니 더 행복해지는 느낌이다.


  제주도에 내려와 별 일 다해본다. 태어나 처음 무당도 만나보고, 내 인생 참~~ 버라이어티해졌다~~


  하품도사의 소문이 지금 사는 타운하우스에 퍼져 여기에서만 벌써 네 명이 그 분을 만나고 왔다. 예약을 잡아놓고 기다리는 사람도 아직 있다. 아내는 한 번 더 간다고 한다. 지난번에 갔을 때는 너무 준비없이 가서 제대로 못 물어봤다나? 하품도사를 처음 소개해준 강남이웃의 여자분이 나까지 다녀왔다고 하니

  "형부, 그러지 말고 형부 카니발에 모두 타서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다 같이 가요~~!"

라고 해서 한참을 웃었다.

  제주도에 사니 참 바쁘다. 주말에도 쉴 틈이 없다. 참~~ 분주하고 재미난다.


  그건 그렇고

  이쯤에서 항상 드는 의문인데...

  

  그런데,

  정말...

  어떻게 맞췄지......?  

점보고 오는 길에 헬스장을 등록했다. 하품도사님이 무릎이랑 종아리 관리를 하라시니... 무당분이 미루고 미루던 헬스장까지 등록하게 해주시고.... 용하긴 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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