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 이름도 무서운 너, 태풍

제주도 태풍의 기억

by JJ teacher

내 고향 대전, 대전은 종종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곤 한다. 실제 대전에 살며 태풍이나 홍수, 가뭄, 폭설 등 자연재해를 한 번도 겪은 적이 없다. 가끔 뉴스에서 자연재해로 난리인 지역이 방송에 나오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충청도 사람들의 성격을 흔히 '뜨근미지근하다.'라고 표현하는데 날씨 또한 그랬다. 살기 좋은 도시 대전! 어렸을 때는 이점이 대단한 자부심이었다. 교직생활을 하면서 서울에서 살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사는 것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다. 서울도 날씨가 원만해서 사람이 살기에 좋았다. 그렇게 대전과 서울에서만 살아본 내가 섬에 살게 되었다.

대전의 명물- 으능정이 거리 '스카이로드'

제주도는 언제나 태풍의 길목에 있다. 우리나라를 지나가는 태풍은 제주도를 거쳐야만 육지에 상륙할 수 있다. 태풍이 기세등등할 때 제주도를 거쳐가고, 제주도에서 맹위를 떨치고 힘이 빠진 후에야 육지에 도착한다. 서울에 살 때 태풍이 오니 아파트 유리창에 테이프를 붙이라고해서 해보았지만 태풍이 지나가면 항상 똑같은 생각을 했다.

'태풍은 언제 오는 거야?'


우리 가족은 2018년에 제주도로 이주를 했다. 그해 늦여름 제주도의 태풍을 처음 경험해 보았다. 우리 가족이 처음 겪은 태풍은 '솔릭'이었다. 저녁쯤에 찾아온 태풍은 나를 한숨도 자지 못하게 만들었다. 바람의 세기가 내가 태어나 처음 겪어본 강도였다. 그때 살던 집에는 커다란 나무가 많았는데 금방이라도 나무가 쓰러져 자동차와 집을 덮칠 것만 같았다. 창틀사이로 쉴새없이 빗물이 스며들어왔고 창문은 무섭게 흔들렸다. 태풍이 어찌나 천천히 이동하는지 저녁부터 맹위를 떨치던 태풍은 다음날 오전이 지나도록 제주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12시간 이상의 시간을 공포에 떨어야 했다.

태풍 '솔릭'- 제주도를 정확하게 관통했다.

태풍이 지나가고 마당으로 나갔을 때, 우리집 '강아지 제주'의 개집 지붕이 날아가 그 안에서 제주가 낑낑거리고 있었다. 밖에 쌓아두었던 물건은 이리저리 흩어져 정리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정말 별탈 없었다는 점에 감사했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공포에 떨며 태풍을 맞았는데 놀라운 것은 제주도민들의 반응이었다.

"뭐 이만한 태풍에 잠을 못자요? 제주도에 살면 매년 겪는 일이에요. 이 정도 태풍은 아무 것도 아닌데, 큰일이네~~"

제주도민들은 우리를 '서울촌사람' 보듯이 말했다. 태풍을 뚫고 출근을 한 아내는(제주도에서는 왠만한 태풍에는 절대로 휴교하지 않는다.) 퇴근후에 기가막히다는듯이 말했다.

"우리 학교 OOO선생님, 어제 태풍 왔는데 머리 말고 왔더라? 내가 태풍인데 무슨 머리냐고 했더니, 예약해놔서 어쩔 수 없었대."

내가 한숨도 자지 못하며 공포에 떨던 시간에 머리를 마는 클라쓰~~!! 이것이 제주토박이들의 경지였다.

우리 가족은 태풍 '솔릭'이 지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태풍 '콩레이'를 맞았다. 그때도 물론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후로도 태풍은 매년 찾아왔다. 2019년 다나스, 링링, 타파, 미탁, 2020년 마이삭, 하이선.... 아마 올해 가을이면 여지없이 태풍 2~3개는 기본으로 제주도를 지나갈 것이다.

태풍, 올해는 누가 올 거니?

제주이주 4년차, 이쯤되면 이주민도 제주도 날씨에 적응한다. 2019년에 네 개의 태풍을 두 달 사이에 모두 겪으면서 우리 가족도 태풍에 단련이 되었다. 작년에 우리나라를 떠들석하게 했던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 때는 밤새 참 잘~~ 잤다.

'너 또 왔구나?'

제주도에 살려면 제주도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적응해야 한다. 제주도는 몇 분 전까지 햇빛이 쨍하다가도 비가 세차게 내리고, 금세 또 맑아진다. 바람은 항상 분다. 단지 약하게 부는지, 강하게 부는지의 차이일 뿐이다. 얼마전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 한 말이 기억난다.

"형님, 저는 매년 기대되기도 해요. 이번 태풍은 얼마나 셀지. 작년보다 더 세려나 궁금하기도 하고."

이쯤되어야 제주도민인 것이다.

태풍 '솔릭'이 우리나라를 벗어나 소멸하자마자 서울 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던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제주도 태풍 안왔지? 서울은 바람도 안 불어. 비껴갔나?"

참.... 이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야속하다. 저는 무서워 죽는줄 알았거든요~~?

그 이름도 무서운 너, 태풍!

올해는 누가 올 거니?

어제 찍은 제주하늘- 그래도 역시 날씨 좋은 제주가 좋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 사랑 한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