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잔디깎기 기계가 고장이 났다. 전기를 꽂고 돌리자 타는 냄새가 났고, 스위치를 누르니 3초 정도 덜덜거리더니 꺼져버렸다. 기계를 차에 싣고 보쉬 서비스센터로 갔다.
"모터가 나갔네요. 메인보드판도 갈아야 하구요. 그냥 하나 새로 사시는 것이 낫겠어요."
3년 정도 잔디깎기를 썼더니 수명이 다 한 것이다. 몇 만원이라도 아껴보자는 마음으로 수리를 맡길까 하다가 이내 마음을 바꾸었다. 어차피 잔디깎기는 전원생활에 없어서는 안되는 물건이기에 아까워할 필요가 없다.
"새 것으로 주세요."
일주일을 기다려 어제 새 보쉬 잔디깎기를 가지고 왔다. 잔디를 관리하지 못하는 동안 잡초와 잔디가 뒤엉켜 마당이 심란했다. 아직 날은 더웠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릴선을 끌어다가 코드를 꽂고 스위치를 켰다.
드르렁~~!
역시 새 물건은 좋다. 전에 쓰던 기계보다 시원하게 밀리고 힘도 많이 들지 않았다. 그나마 덜 더운 저녁에 일을 시작했는데 해가 넘어가서야 끝났다. 땀은 비오듯이 쏟아지고, 몸은 온통 모기밥이 되었다.
새로 산 잔디기계
전원주택에 산다는 것, 특히 잔디가 깔린 마당에 살려면 주기적인 잔디관리를 각오해야 한다. 돈 주고 업체에 맡기는 방법도 있지만, 한 번 업체에서 해주는 비용이면 잔디기계를 산다. 평균 한 달에 한 번은 잔디를 깎아야 하는데 경제적 부담이 크다. 내가 잔디를 직접 관리하는 것은 꼭 경제적인 이유만은 아니다. 잔디를 깎는다는 것은 전원생활을 상징하는 일이기에 내 힘으로 하고 싶다. 잔디 깎는 일조차 하지 않고 편하게 살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제주도심의 아파트로 이사왔을 것이다.
흔히 전원생활을 대표하는 물건으로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잔디기계이고, 다른 하나는 웨버그릴이다. 마당에서 그릴에 바비큐를 하고, 휴일이면 마당의 잔디를 깎는 일! 단독주택에 살며 이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더운 여름에 잔디를 한 번 밀면 거의 탈진해서 쓰러지다시피 한다. 나와 친하게 지내는 성산에 사는 동생이 한여름에 이런 말을 했다.
"형님, 저는 저희 집 마당 그냥 공그리치고 싶어요."
정원만 200평에, 그림 같은 집에 사는 성산 동생이지만, 현실과 낭만은 이렇게 차이가 난다. 나처럼 타운하우스에 딸린 작은 잔디마당을 가꾸는 것도 힘든데, 그 동생은 어떠하겠는가?
잔디정리 중
내가 3년 넘게 잔디를 가꾸는 동안 한 번 쳐다보지도 않던 서울특별시 출신 아내가 웬일인지 목장갑을 끼고 나왔다.
"뭐 좀 도와줄까?"
괜찮다고 하면 금방 들어갈까봐 얼른 말했다.
"다른 것은 됐고, 저기 갈퀴로 깎고 남은 잔디만 긁어줘."
폐잔디를 긁어내지 않으면 새잔디가 잘 자라지 않기에 이 일은 필수다. 별로 힘든 일이 아니기에 아내에게 시켰는데 잔디를 밀고, 아내를 보며 한참 웃었다. 갈퀴를 무슨 빗자루로 교실 청소하듯이 쓰는데, 참~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도시여자는 다르다. 결국 충청도 출신인 내가 남은 일을 정리하고 일을 마쳤다. 주위가 어둑했다.
여보~! 그건 빗자루가 아니잖아~~
잔디를 깎을 때면 항상 같은 생각, 같은 패턴이다.
'으이구~! 편한 아파트에 살면 될 걸. 사서 고생이람.'
하다가도 말끔하게 정리된 마당을 보면
'이 맛에 전원주택 사는 거지. 속이 다 시원하네.'
라고 생각한다. 노동의 기쁨! 이때 절대 빠지면 안 되는 것이 있다. 맥주, 특히 잔디를 깎고 마시는 맥주는 기가막히다. 아내가 한 잔 시원하게 들이키며 말한다.
"아휴~! 힘들어."
갈퀴를 빗자루로 착각한 아내이지만, 고마운 마음에 함께 잔을 부딪쳐 주었다.
"고생했어."
서울에서 살아도 되는데, 제주병 걸린 남편 만나 아내도 고생이다.
'그래, 일 좀 못하면 어때?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若將除去無非草 好取看來總是化 (약장제거무비초 호취간래총시화) - 주자 (베어버리자니 풀 아닌 게 없지만, 두고 보면 모두가 꽃 같더라.)
존경하는 주자 선생님께서는 풀도 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제주도에서 잔디를 밀어보니 내 눈에는 꽃도 잡초 같아 보여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