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기대치를 낮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기대치를 낮추는 주문!

by 제이투 J

기대치를 낮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기대치를 낮추는 주문!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대치동 수학 1타 학원 “황소”의 부원장이다. 친구와는 중학교 때부터 친해져서 지금은 가장 연락을 많이 하며 고민도 털어놓는 사이다. 나는 회사원이자 전문투자자 그리고 글을 쓰는 작가이고 내 친구는 사교육에서 최고 정점을 찍는 대치동 초등학교 수학 끝판왕인 황소의 부원장이다. 어쩌면 나와는 삶의 궤적이 전혀 다르다. 나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삶을 추구하고, 내 친구는 사회가 동경하는 상위 1%를 배출하는 수학 강사이다. 나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사고하는 교육, 몸으로 경험하는 체험적 교육관을 선호한다. 이는 내가 그렇게 커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유로운 삶 속에서 나는 마침내 경제적 자유와 작가라는 내 삶의 잠자는 거인을 깨워냈다. 그러므로 내 삶의 과정이 괜찮았기 때문에 나의 교육관과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부모로서 지금이 내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친구는 공부를 많이 가르친다. 아무래도 대치동 강사이며 치열하게 최상위 권을 꿈꾸는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습관적으로 공부가 우선인 교육을 우선시한다. 아이를 가르치는 교육관도 전혀 반대다. 내가 정답이다. 내 친구가 정답이다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준점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친구랑 술자리에서 대치동 이야기를 들어보면 깜짝 놀랐을 때가 많다. 나만 뒤처지고 있는 건가라는 의문점도 드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최대한 내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을 타인의 시선이 아닌 비교심을 걷어낸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한다. 황소는 수학만을 가르친다.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학원에서 제공하는 문제를 풀어 통과해야만 학원에 입학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초등학교 수학인데 벌써 선행학습을 통해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문제를 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니 보통 친구들이 상위권 학생을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대치동에는 수학뿐만 아니라 여러 과목에 대해서 1타 학원들이 존재하고 초등학교 의대 입시 반까지 존재한다. 의대를 목표로 어려서부터 공부를 가르치는 것이다. 내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과 대치동에서 아이를 키우는 시각에서 좋다 나쁘다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이가 하고 싶어 하냐 아니냐가 기준점이 될 수는 있다. 부모의 꿈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게 아닌지? 아니면 부모가 못 이룬 꿈을 성공이라는 틀에 가둔 체 아이가 대신 꿈꾸게 하는 건 아닌지 물음표를 던져 봐야 한다.

친구에게 부작용 또한 많이 들었다. 자기가 좋아해서 주도적 선행학습을 하는 아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많다는 것이다. 대치동에 산다는 건 어쩌면 부모님들이 상위 1% 이상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더 성공에 대한 갈망이 크다. 아이들도 자신과 같이 공부를 통해 성공해서 사회적 지위를 높게 가져갔으면 하는 바람이 클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 또한 자신 내면의 꿈이 있다. 하지만 적성에 많지 않은 공부를 꾸겨 넣어 가면서 아이들을 쳇바퀴 돌 듯 살아가게 하는 게 정답일까? 그 나이 때는 오히려 창의적인 생각과 아이들과 마음껏 뛰어노는 삶을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한 명 있었다. 친구에게 직접들은 이야기이다. 이 친구는 학원에 들어오면서부터 몸을 비비 꼰다고 한다. 하지만 친구가 봤을 때 수학적 재능은 타고난 친구라고 한다. 대치동 황소에 입학할 정도면 공부를 곧잘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스스로 공부하길 원하지 학원에서 앉아서 공부하는 걸 힘들어했다고 한다. 그리고 수학학원이 끝나면 영어학원 영어학원이 끝나며 논술학원 쉴 새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 시점부터는 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자주 관찰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학원을 도대체 몇 개나 다니니? 아이는 평일에만 네 군데 다니고 학원이 끝나면 집에 가서 학원에서 내준 숙제를 푸냐고 종일 공부만 해요 “저 너무 피곤해요” “아이들하고 뛰어놀고 싶어요. 선생님” “수학은 좋은데 다른 학원도 너무 많이 다니다 보니 공부를 해야 하는 건 알겠는데 점점 지쳐가는 것 같아요” 엄마한테 공부 조금만 하면 안 되라고 말하면 엄마가 화내는 모습 때문에 다시 이야기하기가 힘들어요. 엄마는 “다른 친구들 진도 나가는 거 안보이냐?”“지금 뒤 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들어가면 따라갈 수 없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왜 사는 건가에 관한 생각도 잠깐 한다고 한다. 내 친구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머님과 상담을 했지만 너무나 교육관이 확고해서 내가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아이가 조금 쉴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엄마는 듣지 않았다고 한다. 친구는 가슴이 매우 아파했다.

나는 글을 쓰는 작가로서 행복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어떡하면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까? 단기적 행복이 아닌 꾸준한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은 어쩌면 모든 사람이 원하는 목표일 수도 있다. 나는 행복의 지점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고 정답은 아니지만, 나만의 기준을 정했다. 하루에 조금씩 성장하자. 하루에 조금씩 성장했을 때 매일 매일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도 부모도 꾸준히 성장해 나갈 때 미래의 걱정, 과거의 실패로 인한 후회가 없어진다. 오로지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 행복은 어쩌면 현재를 잘살아갈 때 매일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 미래의 목표는 하루를 잘살아가다 보면 미래의 내가 나 자신에게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조금씩 성장하는 사람은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오늘도 충분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기 때문이다. 미래가 두렵다는 건 현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거나 정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이와 부모 둘 다 해당한다.

두 번째 지금의 감정을 마음껏 느끼며 살아가자. 우리의 삶은 한 번 주어진다. 인생은 영원할 것 같지만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가장 우리가 후회하는 건 그때 왜 못했을까? 그때 그걸 해야 했는데? 뭐 뭐 했더라면! 뭐 뭐 할걸! 모든 게 과거형 후회다. 현재를 살아가지만, 과거를 후회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그 지점에서 고통이 수반되고 과거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이 때 별로 느껴봐야 하는 감정을 충분히 느끼며 살아가야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현재를 즐길 수 있다. 계절도 사계절이 존재하는 것처럼 계절마다 냄새, 소리, 기분, 모든 게 다르다. 눈을 감고 팔을 벌려보자. 계절마다 느껴지는 소리, 감촉, 공기의 내음 모든 게 다르다. 아이들이 커가는 나이 때마다 느끼는 감정을 모두 느껴봤으면 좋겠다. 그때뿐인 감정과 생각을 아이들과 공유하고 다시 없을 그때만의 감정들을 느끼고 살아갈 때 행복이라는 감정이 아이의 나이테 깊숙이 새겨지지 않을까?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느끼고 잊지 못하다면 오늘부터라도 집 앞에 나가 공기를 마셔보고 두 팔 벌려 어린아이처럼 자연을 느껴본다면 분명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자유를 느끼게 된다.


세 번째 가장 중요한 기대치를 낮추는 주문을 스스로 외치는 것이다. 불교의 스님들은 의도적으로 기대치를 낮추는 연습을 한다. 그러므로 욕심이 없어지는 무소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무소유의 이면에는 기대치를 낮추는 연습이 꼭 필요하다. 우리가 실망하고 불편해하고 시기하고 나를 고통 속에 빠뜨리는 건 어쩌면 기대치를 높게 잡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 자신에게 기대치를 높게 잡아 삶의 기준점을 높이고,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기대치를 높게 부여하기 때문에 실망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기대치를 높여 대하기 때문에 아이의 장점이 보이지 않고 단점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왜 내 기대치는 이렇게 높은데 너는 왜 못 따라와?

엄마가 이렇게 시간과 돈을 너에게 투여하는데 왜 너는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니? 나는 나 자신에게 실망하거나 고통이 다가오면 의도적으로 주문을 외운다. “기대치를 낮추자” “기대치를 낮추는 연습을 하자” 이렇게 주문을 외우고 나면 스스로 마음 한편이 홀가분해진다. 맞아 “나 지금 열심히 성장하고 있지!” “왜 미래의 일을 지금 끌고 와 고통스러워 하고있지” 너! “너무 기대치를 높게 바라보고 있어” “지금 너에게 필요한 건 기대치를 낮추고 현재에 집중하는 거야” 마법처럼 기대치를 낮추는 주문을 외우고 나면 세상이 달라지는 현상을 보게 된다. 오히려 일이 더 잘 풀린다. 기대치를 높게 잡는다는 건 내가 저 지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고통 속에 살 수밖에 없다. 현재 스스로 잘하고 있는데 아직 도달하지 못한 목표를 현재에 끌고 와 고통에 젖어 들게 되는 것이다. 이게 심해지면 우울증으로 발전하고 더 심해지면 자살에 이를 수 있다.


내가 이러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해서 아이가 매번 이쁘게만 보이는 건 아니다.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순간 아이의 행동이 안 좋아 보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화를 내기보다 다시 나에게 주문을 건다. “기대치를 낮추자” 주문을 2번 외치다 보면 다시 아이의 모습이 이쁘게 보인다. 맞아 지금 아이는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화를 내봤자 나아지는 건 아닌데 왜 이런 생각을 했지 오히려 나는 다시 다가가 아이를 꼭 안아준다. 그러면 내면에서 올라오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늘부터 나 자신에게 아이를 위해 기대치를 낮추는 주문을 외워 보자.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너무 내 삶의 목표치를 높게 보고 앞만 보고 달려간다면 기대치를 낮춰보고 현재에 집중해보자. 오늘부터 속으로 “기대치를 낮추자” “기대치를 낮추고 생각하자” 2번 외쳐보자. 생각의 전환과 함께 세상을 바로 보는 시각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기준점을 너무 높이 두기보다 현재에 집중하도록 교육하고 기대치를 낮춰 아이의 장점을 바라보는 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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